언젠가부터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듣는 일이 눈에 띄게 줄었다. 새로운 앨범을 이것저것 들어보기보다는 이미 좋아하는 아티스트와 수십 년 동안 들어온 음악을 다시 찾는 편이 훨씬 편하다.
그렇다고 새로운 음악이 싫어진 것은 아닌 것 같다. 가끔 카페나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우연히 처음 들은 곡이 마음에 쏙 들어 누구의 곡인지 찾아보고 며칠 동안 반복해서 듣기도 한다. 그런 경험이 여전히 즐겁다면 어쩌면 문제는 새로운 음악에 대한 거부감이 아니라 마음에 들지도 알 수 없는 음악을 계속 찾아다니는 일이 귀찮아진 것인지도 모른다.

실제 데이터도 흥미롭다. Spotify Research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이 12~22세였을 때 발표된 음악을 유독 많이 듣는 경향이 나타났다. 2025년 미국 YouGov 조사에서도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을 18세 이전에 발견했다는 비율이 52%였고, 남성은 59%로 여성의 45%보다 높았다. 반면 Spotify가 미국 Premium 사용자 10만 명의 80억 건이 넘는 청취 기록을 분석한 다른 연구에서는 젊은 청취자의 새로운 음악 탐색 비율이 오히려 더 낮았다. 나이가 든다고 새로운 음악에 대한 호기심까지 반드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질문을 바꿔보자. 곡이 1억 개면 뭐하나. 정작 내가 좋아할 새로운 한 곡을 찾기가 어려운데. 스트리밍은 거의 모든 음악을 언제든 들을 수 있게 만들었지만, 그 거대한 카탈로그에서 내 취향에 맞는 음악을 찾아내는 문제까지 해결한 것은 아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최근 스포티파이(Spotify)가 잇따라 공개하는 AI 기능들이 흥미로워진다. AI DJ에서 Prompted Playlist, Taste Profile, Talk to Spotify와 Studio까지 연결해보면 공통된 방향이 보인다. 사용자가 음악을 찾아다니는 수고를 줄이고 AI가 취향과 의도를 이해해 대신 찾아주도록 만드는 것이다. 아직 상당수 기능은 일부 국가의 베타 또는 Research Preview 단계지만, Spotify가 AI를 통해 음악 발견을 어떻게 바꾸려 하는지는 꽤 분명하다.

AI는 이미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다
Spotify에서 AI와 머신러닝을 이용한 음악 추천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Discover Weekly와 Release Radar, Daily Mix는 오랫동안 사용자가 무엇을 듣고 건너뛰고 저장하며 반복해서 듣는지를 분석해 좋아할 가능성이 높은 음악을 찾아왔다. 그런데 Spotify가 음악을 이해하는 방식은 단순히 ‘이 사람은 재즈를 많이 들으니 다른 재즈를 추천하자’는 식의 장르나 아티스트 분류에 그치지 않는다.
Spotify의 추천 기술에는 음원 자체의 음향적 특징을 분석해 곡을 수치적인 표현, 즉 임베딩(Embedding)으로 변환하고 서로 음향적으로 가까운 음악의 관계를 학습하는 방식이 활용된다. 동시에 어떤 곡들이 플레이리스트에서 함께 등장하는지, 사람들이 어떤 음악을 함께 소비하는지도 학습한다. 여기에 사용자의 청취 이력과 최근의 행동까지 결합하면 장르나 아티스트가 전혀 다른 음악 사이에서도 취향의 연결고리를 찾아낼 수 있다.

그래서 Spotify를 듣다 보면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아티스트인데 이상할 정도로 자신의 취향에 잘 맞는 곡이 이어질 때가 있다. Spotify가 알고 있는 것은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 목록’이 아니라, 내가 좋아했던 음악과 다른 음악들 사이에 존재하는 음향적·행동적 패턴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방식에도 한계는 있다. 과거의 행동을 분석하면 ‘내가 대체로 무엇을 좋아하는가’는 상당히 잘 추측할 수 있지만, 평소 재즈를 즐겨 듣는 사람이 오늘은 1980년대 팝을 듣고 싶은 것처럼 **‘지금 무엇을 원하는가’**까지 알아내기는 어렵다. 최근 Spotify가 생성형 AI와 자연어 인터페이스에 힘을 싣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금까지 AI가 우리의 행동을 보고 취향을 추측했다면, 이제는 사용자가 원하는 것을 직접 말하고 AI가 그 의도에 맞는 음악을 찾아주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1단계: Taste Profile — AI가 알고 있는 ‘나’를 고친다
AI에게 새로운 음악을 찾아달라고 하기 전에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AI가 내 취향을 제대로 알고 있어야 한다. Spotify의 Taste Profile은 음악과 팟캐스트, 오디오북의 청취 기록을 바탕으로 Spotify가 이해하고 있는 사용자의 취향을 보여주고, 여기에 직접 개입할 수 있도록 만든 기능이다.
예를 들어 Spotify가 특정 분위기나 장르를 실제 취향보다 지나치게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면 이를 더 많이 또는 적게 반영하도록 조절할 수 있다. 지금까지는 Spotify가 청취 행동을 보고 일방적으로 ‘이 사람은 이런 음악을 좋아한다’고 판단했다면, 이제는 추천의 출발점이 되는 ‘나에 대한 이해’ 자체를 사용자가 교정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새로운 음악을 AI에게 대신 찾아달라고 하려면 결국 추천의 기준이 되는 취향부터 정확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Taste Profile은 Spotify가 그리고 있는 AI 음악 발견 과정의 출발점에 가깝다. 이 기능은 2026년 3월 뉴질랜드 Premium 사용자를 대상으로 베타를 시작했으며 아직 한국에서는 제공되지 않는다.

2단계: AI DJ — 음악을 찾는 첫 번째 수고를 없앤다
AI DJ는 Spotify의 AI 전략 가운데 가장 대중화된 기능이다. 청취 이력과 취향을 바탕으로 음악을 골라 계속 재생하고, 생성형 AI와 AI 음성을 이용해 실제 DJ처럼 아티스트와 곡에 관한 설명도 들려준다.
사용자가 해야 할 일은 거의 없다. 자주 듣던 곡과 한동안 잊고 있던 음악, 새롭게 발견할 만한 곡을 Spotify가 알아서 섞어준다. 음악 발견에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수고인 ‘무엇을 틀지 결정하는 일’부터 AI에게 맡기는 셈이다.
3단계: DJ Requests — 지금 듣고 싶은 것만 말한다
AI DJ는 DJ Requests를 통해 일방적인 추천에서 대화형 선곡으로 발전했다. ‘내가 아직 들어보지 않은 인디 음악’, ‘저녁에 편하게 들을 재즈’처럼 원하는 음악을 말하면 Spotify가 기존 취향과 현재의 요청을 함께 고려해 재생 방향을 바꾼다.
AI DJ가 ‘내 취향을 알고 있으니 알아서 골라줘’였다면 DJ Requests는 ‘내 취향은 알 테니 지금은 이런 걸 찾아줘’에 가깝다. Spotify는 2026년 DJ 지원 범위를 한국을 포함한 75개 이상의 시장으로 확대했다.

4단계: AI Playlist — 막연한 생각을 플레이리스트로
2024년 베타로 등장한 AI Playlist는 자연어로 설명한 아이디어를 실제 플레이리스트로 바꿔준다. 장르와 시대, 분위기는 물론 활동이나 장소 같은 조건도 조합할 수 있고,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추가 지시를 통해 다시 다듬을 수 있다.
AI DJ가 지금 들을 음악을 대신 결정한다면 AI Playlist는 머릿속에 있는 막연한 음악적 이미지를 저장하고 다시 들을 수 있는 선곡 결과로 만들어주는 기능이다.

5단계: Prompted Playlist — ‘내가 모르는 좋은 음악’을 찾아줘
이번 이야기와 가장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것은 Prompted Playlist다. Spotify는 이 기능을 사용자가 추천 알고리즘의 방향을 직접 조절한다는 의미의 ‘Steer the algorithm’으로 설명한다.
AI Playlist와 중요한 차이는 사용자의 전체 Spotify 청취 이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점이다. 여기에 음악과 문화의 최신 흐름, 트렌드와 차트 같은 정보를 결합하고 사용자가 자연어로 제시한 조건에 따라 음악을 찾는다.
Spotify가 공식적으로 제시한 활용 사례 가운데는 흥미로운 예가 있다. 아직 한 번도 들어보지 않았지만 자신이 좋아할 가능성이 높은 아티스트를 찾아달라고 요청하고, 그 아티스트를 알아갈 수 있도록 카탈로그에서 곡을 골라달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는 방식이 꽤 달라진다. 수십 곡을 직접 넘겨가며 마음에 드는 곡을 찾는 대신 ‘내가 좋아할 가능성이 높지만 아직 모르는 음악’이라는 조건만 AI에게 주면 된다. 만들어진 목록을 매일 또는 매주 새로운 음악으로 갱신하도록 설정할 수도 있다.
Prompted Playlist는 현재 미국, 캐나다, 영국, 아일랜드, 호주, 뉴질랜드, 스웨덴의 Premium 사용자를 대상으로 영어 베타가 제공되고 있으며 팟캐스트까지 지원 범위가 확대됐다.
6단계: Talk to Spotify — 검색창 대신 대화한다
Talk to Spotify에 이르면 자연어 인터페이스가 플레이리스트를 넘어 Spotify 전체로 확대된다. 음악을 요청하고 현재 듣고 있는 곡에 관해 질문하거나 자신의 과거 청취 기록을 살펴보고 팟캐스트와 오디오북까지 대화 방식으로 탐색할 수 있다.
정확한 아티스트나 앨범명을 알고 있을 필요도 없다. 무엇을 원하는지 설명하고,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이야기하면 된다. 음악 검색이 키워드를 입력하는 행위에서 자신의 의도를 설명하는 대화로 바뀌는 것이다.
Talk to Spotify는 현재 미국, 아일랜드, 스웨덴의 18세 이상 Premium 사용자를 대상으로 영어 베타가 진행되고 있다.
7단계: Studio — 필요한 오디오 경험 자체를 만든다
Studio by Spotify Labs에 이르면 AI의 역할은 음악 추천을 넘어선다. 사용자의 음악과 팟캐스트, 오디오북 취향을 이해하면서 외부 정보까지 활용해 개인에게 필요한 오디오 경험 자체를 구성하는 개념이다.
여행을 위한 개인 오디오 브리핑이나 장거리 운전용 플레이리스트, 특정 주제를 공부하기 위한 개인 팟캐스트 등을 만들 수 있다. 사용자의 허가를 전제로 웹에서 정보를 조사하거나 캘린더, 이메일, 노트 같은 외부 도구와 연결하는 에이전트 기능도 염두에 두고 있다.
Studio는 아직 제한된 사용자를 대상으로 단계적으로 제공되는 Research Preview다. 당장 일반적인 Spotify 기능이라기보다는 Spotify가 생성형 AI 이후의 스트리밍 서비스를 어떻게 그리고 있는지 보여주는 실험에 가깝다.

Spotify가 가진 가장 강력한 AI 자산, 20년 가까이 쌓인 취향의 기록
이 기능들을 하나의 전략으로 연결하는 기반에는 Spotify의 Large Taste Model(LTM)이 있다. Spotify는 2026 Investor Day에서 플랫폼에서 하루 약 3조4,000억 개의 이벤트와 취향 신호가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일반적인 대규모 언어 모델이 언어와 개념 사이의 관계를 학습한다면 Spotify의 Taste Model은 음악과 팟캐스트, 오디오북을 둘러싼 사람들의 행동과 취향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리고 이것은 Spotify가 생성형 AI 경쟁에서 가진 독특한 자산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축적된 ‘이 사람이 무엇을 좋아했는가’라는 기록에 자연어로 전달되는 ‘지금 무엇을 원하는가’가 더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Search → Recommendation → Generation
Spotify는 이러한 변화를 Search → Recommendation → Generation이라는 흐름으로 설명한다. 초기 스트리밍에서는 사용자가 이미 알고 있는 아티스트와 앨범을 직접 검색했다. 이후 Discover Weekly 같은 개인화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Spotify가 취향을 분석해 먼저 음악을 제안하는 Recommendation의 시대가 열렸다.
다음 단계는 Generation이다. 여기서 Generation은 반드시 AI가 음악 자체를 작곡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사용자의 취향과 상황, 현재의 의도를 이해해 그 순간 필요한 재생 흐름과 플레이리스트, 개인화된 오디오 경험을 구성한다는 의미에 가깝다.
결국 Spotify가 바꾸려는 것은 추천 알고리즘 하나가 아니라 우리가 음악을 찾는 방식 자체다.

1억 곡보다 중요한 ‘내가 좋아할 한 곡’
오디오파일의 관점에서 이런 AI가 DAC의 성능을 높이거나 스트리밍 음원의 해상도를 높여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음악을 오래 들어온 사람에게는 다른 의미에서 꽤 중요한 기술이 될 수 있다.
스트리밍 서비스에는 평생을 들어도 다 듣지 못할 만큼 많은 음악이 있다. 그런데 음악이 많아질수록 역설적으로 그 안에서 내가 좋아할 새로운 한 곡을 찾는 문제는 더 어려워졌다. ‘내가 즐겨 듣는 재즈를 분석해서 아직 들어보지 않은 ECM 아티스트를 찾아줘’, ‘자주 듣는 클래식 작품 가운데 내가 모르는 다른 연주를 골라줘’ 같은 요청은 기존의 검색창보다 자연어 AI에 훨씬 잘 어울린다.
물론 현재 Spotify AI가 특정 마스터링이나 카탈로그 번호, 녹음 엔지니어, 다이내믹 레인지까지 판별하는 오디오파일 전문 검색 엔진은 아니다. 하지만 취향을 바탕으로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는 방식만 놓고 보면 변화의 방향은 분명하다.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어쩌면 나이가 들면서 새로운 음악을 싫어하게 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음악을 찾는 데 쓸 시간과 인내심이 줄어든 것인지도 모른다. 이미 좋아하는 수백 장의 앨범은 손만 뻗으면 들을 수 있는데 마음에 들지도 알 수 없는 음악을 수십 곡씩 넘겨가며 찾아다니는 일에는 제법 큰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Spotify가 말하는 Generation의 가치는 AI가 음악을 만들어주는 데 있지 않을 수도 있다. 오히려 우리가 오랫동안 쌓아온 취향을 이해하고 그 취향의 경계 바로 바깥에 있는 음악을 대신 찾아주는 것에 있을 수 있다.
언젠가 AI에게 ‘내가 지난 20년 동안 좋아했던 음악을 보고 아직 한 번도 듣지 않았지만 좋아할 것 같은 곡을 하나 틀어줘’라고 말했는데, 처음 듣는 그 곡이 정말 마음에 쏙 든다면 어떨까.
그 순간 AI는 단순한 추천 알고리즘이 아니다. 우리가 다시 새로운 음악을 찾아 나서게 만드는 도구가 된다.
관련 자료
- 음악적 정체성의 형성과 환경 변화 – Spotify Research
- 스포티파이에서 새로운 음악을 탐색하는 방식의 변화 – Spotify Research
-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을 처음 듣기 시작한 나이에 관한 조사 – YouGov
- 대규모 음악 추천을 위한 사용자 취향 표현 기술 – Spotify Research
- 생성형 검색을 이용한 프롬프트 기반 음악 추천 기술 Text2Tracks – Spotify Research
- 스포티파이의 오디오·비주얼 인텔리전스 연구 – Spotify Research
- 스포티파이 AI DJ – Spotify Newsroom
- 스포티파이 AI Playlist – Spotify Newsroom
- 스포티파이 Prompted Playlist – Spotify Newsroom
- 스포티파이 2026 Investor Day: AI·개인화·Large Taste Model – Spotify Investor Relation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