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입된 에너지로 얼마만큼의 일을 할 수 있는가를 수치로 나타내는 “효율”이라는 평가 기준은 산업계 전반에 걸쳐 보편적으로 사용된 지 벌써 반세기가 넘어가고 있다. 효율에 대한 본격적인 요구가 높아진 때는 대략 1973년의 1차 오일 쇼크로 보는 시각이 많다. 세계대전이 마무리되고 전후 복구로 창출된 유효 수효와 베이비붐 세대의 중산층화로 오랫동안 경제적 호황을 누린 서구 국가들은 부족함을 잊고 살았다. 이런 배경에는 낮은 유가도 큰 요인이었지만, 1973년 중동 산유국들이 정치적, 경제적 이유로 1배럴당 가격을 4배 가까이 올리는 유가 합리화 정책 선언 후 자원이 무기화되어 가격이 급등하며 무한정 에너지를 쏟아 붓는 시대의 한계를 맞게 되었다.
효율과 비효율
에너지 과소비는 비용의 문제뿐만 아니라 환경 오염까지 일으켰다. 베이비붐 세대가 누린 경제 호황기를 반영했던 대표적인 아이콘이 V8 기통, 6000cc급의 배기량의 엔진의 차량들이 주류를 이루던 미국 빅3 자동차 제조사들의 머슬카였다. 불과 30%의 효율도 안되던 차들은 100리터 가솔린을 태웠을 때, 실제 주행에 쓴 것은 30리터도 채 되지 않고 나머지는 모두 유해한 배기가스로 뿌려졌다. 1970년 미국 상원에서 발의된 대기청정법과 3년 뒤 터진 오일 쇼크는 결과적으로 연료 소비를 줄인 효율 높은 자동차를 만들어야 하는 압박을 받게 되었다. 효율성의 경제적, 환경적 가치가 높아지며 이후 자동차 뿐만 아니라 에어컨 등의 각종 가전까지도 에너지 효율 등급이 높은 제품들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효율로 해결할 수 없는 것들
그러나 모든 것을 효율의 잣대로만 평가할 수는 없다. 효율을 높아지면 반대 급부로 잃게 되는 부분이 있을 수 밖에 없다. 특히 하이파이 오디오는 전기적 에너지 효율만을 우선시할 수 없는 대표적인 분야 중 하나다. 음향기기 중 PA(Publc Address) 시스템이나 레코딩 스튜디오의 사운드 엔지니어가 사용하는 프로 오디오 분야와는 달리 하이파이 오디오는 지극히 개인 소비자 지향적인 제품으로 효율, 친환경 같은 단어와는 거리감이 있다. 필수 가전인 TV는 에너지 효율 등급 스티커가 붙어 있지만, 홈시어터용 AV 리시버나 스테레오 진공관 앰프에는 효율에 대한 어떠한 표기 사항이 단 하나도 없다. 하이파이 마니아들 역시 기기 선택시 에너지 효율 등급을 우선시 하지 않으며, 하이엔드 오디오 제조사들 역시 환경적 규제에 크게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일반 가전 시장 규모에 비하면 하이파이 오디오는 비할 바 되지 않는 작은 규모에 불과한 것도 있지만 그것 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지는 않는다.
진공관에서 시작된 하이파이 오디오는 음악을 제대로 들려주기 위해 음질을 저해하는 요소들을 모두 제거한 반면에 음질을 좋게 만드는 요소에는 필요 이상으로 쏟아 붓는 오버 엔지니어링을 시도한다. 대표적으로 앰프의 경우 효율보다는 음질을 최고 가치로 추구한 결과, Class A 증폭 방식이 음악성을 상징하는 보증수표와도 같은 존재로 오디오파일들에게 1순위 선택을 받는다. 사용되는 전기 중 25% 정도만 재생에 사용되고 나머지는 열로 발산하는 Class A 앰프의 열은 뜨거울 수록 음악적 감수성을 자극하고, 방열을 위한 알루미늄 히트싱크의 기하학적 조형미는 디자이적으로 시각적인 만족감을 선사한다. 원초적인 감성과 즐거움을 추구하는 극단의 경계에서 효율은 무의미한 용어일 뿐이다.
퓨어 Class A 앰프의 산 역사, Sugden
진공관 앰프에서 트랜지스터 반도체 앰프로 세대 교체가 이루어지면서 효율이 개선된 Class B 또는 Class AB 그리고 Class D 같은 증폭 방식은 음악 재생에 음질적 약점이 드러나며 Class A 방식은 여전히 하이파이에서 메인 스트림적 존재이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새로운 증폭 방식과 디지털 앰프가 등장했지만 음악적 재생 능력 면에서 아직도 Class A 를 뛰어넘지는 못하고 있다. 대신 Class A를 보완하여 음질과 효율에 효과적인 타협을 이룬 Class AB 증폭이 다양한 기술이 더해지며 하이엔드의 자리에서도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지만 그 마저도 Class A의 유산을 상당 부분 수용한 결과다.
많은 업체들이 Class AB 또는 새로운 Class D의 가능성에 방향을 돌리고 있지만 여전히 Classs A 앰프는 사라지지 않았고 지난 50년 넘는 세월 동안 이 방식으로 앰프를 만들어온 브랜드가 있다. 바로 브리티시 사운드의 맹주로 꼽히는 서그덴(Sugden)이 그 주인공이다. 1967년 영국 중부 웨스트 요크셔 주에서 설립된 서그덴은 세계 최초의 상업적인 Class A 앰프인 A21을 처녀작으로 내놓은 이후, 지금까지 순수한 클래스 A 증폭 방식만을 고수해 온 하이파이 브랜드이다.

인티 앰프, IA-4
IA-4는 Sugden의 라인업에서 중핵으로 여겨지는 마스터클래스(Masterclass)에 속한 8옴 기준 33W 출력의 Class A 인티 앰프로 창립 50주년을 기념하여 프런트 패널을 오렌지색으로 도색하는 디자인의 변화를 준 모델이다. 자사의 기본 컬러인 건메탈 마감의 스위치와 대비되어 시각적인 개성과 차별화를 보여준다.
듬직한 크기의 섀시와 19kg의 무게는 IA-4의 중량감 있는 존재감을 보여주고, 1개의 밸런스 입력과 3개의 라인 입력을 제공한다. 시대의 흐름과는 달리 아날로그 기기에 대한 배려를 잊지 않고 테이프 입력과 포노 입력(MM 타입)을 제공한다. 스피커 출력 단자는 WBT의 단자를 사용했다.
IA-4는 A21SE의 유전자를 상당 부분 계승했지만 전원부 용량을 3배로 키우고 프리앰프 회로의 질적인 업그레이드로 자사의 최상위 인티 앰프로서의 가치를 담아냈다. 더욱 커진 섀시는 넉넉한 내부 공간으로 공기의 대류에 의해 뜨거운 앰프의 열을 적당한 수준으로 유지한다. IA-4 인티앰프의 섀시는 매우 적절한 크기로 설계되고 라운딩 처리된 좌우 방열판은 앰프의 열을 효과적으로 배출한다. Class A 방식이긴 해도 오랜 시간 음악을 들으면서 섀시를 만져봐도 뜨거움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약간 따듯함이 느껴지는 정도여서 무더운 여름에 에어컨 없이 음악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뜨거운 열기로 인한 내구성의 문제를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사운드 퀄리티
신품 상태의 IA-4를 일주일 정도 틀어 놓고 기본적인 번-인 시간을 넘겼다고 판단되는 시점에서 본격적인 청음을 시작하였다. IA-4를 평가하기 위해 소스 기기로 플레이백 디자인스의 MPT-8, MPD-8을, 스피커는 PMC Fact 3를 사용했다. 구동이 제대로 되면 뛰어난 음상과 음질로 들려주는 PMC Fact 3는 스피커 보다 과한 앰프로 매칭하면 크기 이상의 사운드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서그덴으로 음악을 들으면 33W라는 출력 스펙은 단지 수치에 불과할 뿐이다. 스피커를 다루는 고삐를 절대 느슨하지도 놓는 법이 없다. 그렇다고 인위적으로 힘을 강조하느라 지나치게 팽팽히 당기는 느낌도 없다. 노련한 기수처럼 강약 조절을 능수능란하게 펼치며 스피커를 아주 여유롭게 다룬다. IA-4의 출력 수치는 높지 않지만 높은 rpm을 선형적인 반응으로 이끌어내는 과거 V12 기통 자연 흡기 엔진처럼 매끄럽게 음을 쏟아낸다. 해외 오디오 저널의 언급을 통해 브리티시 스피커 제조사들이 주로 선택한 레퍼런스 앰프가 서그덴이었다는 의미를 듣는 내내 체감으로 이해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인티 앰프라는 선입견을 깨고 음을 펼쳐내는 사운드 스테이지가 예상을 뛰어넘어 넓고, 깊어서 3차원적인 공간감 재현도 수준급이다. 고음역의 표현이 좋고, 저음역은 퍼지지 않고 단단하게 조여지는 느낌이다. 다만, 사용면에서 아쉬운 점이라면 볼륨 커브가 0부터 너무 급격히 올라가서 음량 조절이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제공되는 RC5 리모컨의 작동은 직관적이고 편리하여 빠르고 쉽게 적응했다.
Richard Wagner – Rheingold “라인의 황금” (Wien Philharmoniker, Solti)
나흘간 공연되는 니벨룽겐의 반지의 첫 작품인 라인의 황금 중 마지막 곡인 “Rheingold! Rheingold! Rheins Gold!”에서 발할라의 주제를 표현하는 바그너 튜바의 선율 위에 트럼펫의 화려함과 호른의 부드러움이 겹치고 트롬본과 튜바의 무게감이 실린 베이스의 둔중한 금관의 하모니가 다채롭게 펼쳐지는 장면을 소화해내는 IA-4의 능력은 기대 이상이다.
오디오 제조사들이 프리앰프와 파워 앰프를 분리하고 더 나가 파워 앰프를 모노, 모노로 구성하는 이유가 더 큰 출력을 얻기 위한 것만은 아니란 것을 구력이 쌓인 오디오파일이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출력의 여유로움은 스피커 구동을 더욱 능수능란하게 하여 유려한 음색과 3차원 적인 소리의 텍스처를 펼쳐내 공간과 위상을 더욱 정확하게 표현하여 음악을 생동감 넘치게 재생하는 것이 궁극의 목적일 것이다. 인티 앰프가 지닌 한계가 분명히 있지만 서그덴 IA-4는 기대 이상의 퍼포먼스를 펼쳐 보이는 능력이 출중하여 한정된 예산의 압박을 겪고 있는 오디오파일이라면 청음을 권하고 싶어질 정도다.
Carl Orff – Carmina Burana (Orchester und Chor Deutchen Oper Berlin, Thielemann)
오디오 시스템의 자원을 고갈시키는 대표적인 곡으로 다섯 대의 팀파니, 두 대의 스네어, 베이스 드럼, 공 등을 동원한 타악기 군 만으로도 정규 편성의 오케스트라의 규모를 훌쩍 뛰어넘는다. 혼성 4부 합창과 소년 합창단과 함께 펼쳐지는 오케스트라 튜티는 다이나믹한 프레이즈로 펼쳐져 콘서트홀을 거대한 음향 에너지로 가득 채운다.
IA-4로 들은 첫 곡 ‘O Fortuna(운명의 여신이여)’에서 팀파니와 함께 두 대의 피아노와 한대의 첼레스타가 첫 음을 장식하며 느린 템포의 합창이 이어지다가 갑작스러운 데크레셴도로 바뀌는 템포의 변화를 드라마틱 하게 표현하는 완급 조절이 눈에 띈다. 피아니시모부터 포르티시모까지 음의 세기와 라르고부터 프레스토까지 음의 빠르기를 표현하면서 뉘앙스까지 살릴 수 있는 오디오라야 하이엔드로 자리매김을 할 수 있다. IA-4 가 이러한 경계에 도달했다고는 말하기 어렵지만 기기에 매겨진 가격을 수긍케 하는 충분한 퍼포먼스를 펼쳐 보였다.
정리
물론 이것이 IA-4만의 전적인 능력이라 할 수는 없지만, 휠씬 더 체급이 높은 소스 기기의 신호를 주눅 들지 않고 처리하는 IA-4의 준수한 실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미로형 인클로저로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가진 PMC 스피커를 힘을 빼고 펀치를 날리는 노련한 복서처럼 스피드와 순간의 임팩트 넘치는 에너지는 뿜어내는 서그덴 IA-4는 상당히 어울리는 매칭이었다. 고집스럽게 클래스 A 방식과 미로형 인클로저라는 아이덴티티를 지켜온 브리티시 사운드의 콤비네이션은 오디오파일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조합이다.
아날로그 사운드의 미덕을 지켜온 서그덴의 라인업에서 최상위 인티 앰프인 IA-4가 제공하는 포노단을 활용하여 청음을 하지 못한 것은 못내 아쉽지만 탄탄한 스피커 구동력, 활기가 넘치는 사운드, 수준급의 음색과 음장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IA-4와 함께한 시간이 즐겁고 유쾌한 시간이었다.
제품사양
서그덴 IA-4
Line Input sensitivity | 125m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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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no Input Sensitivity | 2mV (MM) |
Power Output | 33 Watts per channel |
Frequency Response | +/-1dB 14Hz-200kHz |
Bandwidth | 6Hz-300kHz |
Signal to Noise | >84dB |
Gross Weight (packed) | 20kgs |
Dimensions | 165 x 430 x 440mm (hwd) |
수입원 | (주)다미노 www.damino.co.kr 02-719-57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