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 스트리밍으로 가는 비상구

audiolab

9000N

DTS Play-fi를 고집하며 약간은 메인스트림에서 벗어난 것 같았던 오디오랩이 완전히 일신한 플래그십 네트워크 플레이어 9000N을 출시했다.
오디오평론가 코난
이동훈

오디오랩 9000N

네트워크 플레이어 / DAC

영상 리뷰

네트워크 스트리밍으로 가는 관문

CD, LP 등 피지컬 포맷의 시대가 저물고 파일 음원 재생의 시대가 열린지도 얼마 안 되어 우리 앞에 네트워크 스트림의 문이 열렸다. 이더넷 케이블만 연결하거나 또는 이조차도 필요 없이 무선 와이파이만 연결되면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필자조차도 CD만 약 5천장 정도까지 컬렉션 했었지만 결국 네트워크 스티리밍이라는 거대한 파도 앞에서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수천, 수억 원을 들여 구입해야만 했던 음반과 그 안에 저장된 음악을 이젠 매달 단돈 만 원대의 구독료로 해결할 수 있다는 데에 자괴감마저 들었다.

이런 심정이 꼭 나만의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음질이었다. 과연 스트리밍으로 듣는 음원이 CD나 LP로 듣던, 적어도 CD로 듣던 음원의 품질을 따라갈 수 있을까? 기존 하이파이 오디오 메이커들은 갑자기 나타난 이 거대한 파도 앞에서 결정을 내려야했다. 여러 고난이 기다리고 있지만 이 파도에 몸을 싣고 부딪쳐 보던가 아니면 스트리밍 기능은 포기하던가. 아마도 린이나 메리디안이 이 거대한 기류를 하이파이 오디오 분야로 도입시켰을 때 패닉 상태에 빠진 메이커들이 많았을 것이다.

하이파이 오디오 메이커들은 각자 그들만의 문을 만들었다. 마치 문지기처럼 네트워크 스트리밍에 사용되는 여러 프로토콜에 대해 인증을 받아 문을 만들었다. 블루투스, 에어플레이는 기본이다. 여기에 범용으로 사용되는 DLNA/UPnP로 진입하는 문도 만들었다. 구글이 만든 구글캐스트에 대해서도 회피할 수 없었다. 메리디안이 산파가 되어 탄생한 ROON의 RAAT 인증도 받아야했으며 MQA라는 새로운 코덱에 대해서도 대응해야했다. 각각의 서비스로 진입하는 문을 만들어 이를 하나의 플랫폼 안에 구성해놓아야만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놀이 공원에 찾아오는 고객들을 더 많이 유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문을 만들려면 각 프로토콜에 대한 인증은 기본이며 들어가고 나오기 쉬운 톨게이트가 필요했다.

영국에 한정하자면 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메이커는 대표적으로 린, 메리디안 그리고 네임오디오 등이 대표적이다. 초반부터 이들은 각자의 네트워크 스트리밍 플랫폼을 구축해나가면서 자신들만의 생태계를 구축해나갔다. 한편 영국하면 빼놓을 수 없는 브랜드들이 한 쪽에서 느린 속도로 프론티어를 쫒았다. 하지만 진척 속도가 느렸다. 사이러스는 최근 들어서야 블루사운드가 협력하면서 스트리밍 플랫폼을 갖추었으며 캠브리지오디오는 자사의 매직스트림을 통해 꿈을 실현했다. 하지만 영국을 대표하는 또다른 브랜드들 쿼드, 오디오랩 같은 브랜드는 어떤 방식으로 이 시대의 파도에 몸을 실었을 것인가?

오디오랩 9000N

오디오랩이 먼저 선전포고를 했다. 사실 이전에 오디오랩이 네트워크 플레이어를 출시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미 6000N Play, 7000n Play 같은 모델을 출시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DTS Play-Fi를 고집하면서 약간은 메인스트림에서 벗어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따. 하지만 9000N에선 완전히 일신한 스트리밍 플랫폼에서 새출발하며 레퍼런스급으로 태어났다. 우선 오디오랩의 예전 그 날렵하고 간결한 디자인의 섀시가 반갑게 맞이한다. 하지만 최신 디지털의 조류에 맞게 좌측에 넓은 디스플레이 창을 마련해놓고 중앙에 역시 심플한 노브를 더해 입력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우측으로는 커다란 노브가 위치하면 이는 볼륨을 조정하는 기능을 부여했다. 한 눈에 DAC면서 네트워크 플레이어이고 프리앰프로도 사용할 수 있는 제품임을 직감할 수 있다. 좌측의 디스플레이는 오랜만에 오디오랩을 만나는 내겐 생소하게 느껴지는데 다양한 디스플레이 모드를 지원하며 시인성도 제법 훌륭한 편이다.

후면으로 시선을 옮기면 여러 입/출력단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는 모습이다. 너무 다양한 기능을 조합하기보단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기능만 넣은 듯 간결, 깔끔하다. 우선 네트워크 플레이어이므로 이더넷 입력단이 마련되어 있다. 한편 디지털 입력은 USB 하나만 지원하는 모습이다. 광, 동축 입력의 부재는 일부 사용자에겐 아쉬울 수 있지만 사실 USB(B)와 선택하라면 USB(B)가 있는 편이 더 좋다. PC와 바로 연결해서 사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근거리에서 들을 경우 네트워크 스트리밍보다 PC에서 직접 USB 연결로 제어하는 편이 편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USB(A) 입력을 통해 플래시 메모리 USB 스틱에 음악을 저장해 재생도 가능하다.

한편 출력은 광, 동축 출력이 가능해 별도의 외장 DAC를 연결해서 사용할 수도 있다. 옆으로는 아날로그 출력단이 두 조 마련되어 있다. 하나는 언밸런스드 RCA, 또 하나는 밸런스드 XLR 출력이다. 우측 상단으로는 와이파이 안테나를 장착하게 되어 있으므로 이더넷 연결 없이도 사용 가능하다. 이 외에 12V 트리거 단자도 마련해 트리거 단자를 지원하는 기기와 동시에 ON/OFF 기능을 작동시킬 수도 있다. 볼륨단을 지원하긴 하지만 별도의 아날로그 입력까지는 지원하지 않는 설계다.

Roon Ready 지원
Tidal Connect
에어플레이2

네트워크 플레이어로서 9000N은 다양한 유/무선 통신 프로토콜에 대응하며 동시에 여러 스트리밍 서비스에 직접 진입할 수 있는 스트리밍 플랫폼을 갖추고 있다. 있단 일단 DLNA/UPnP에 대응하는 것은 기본이며 타이달, 코부즈, 스포티파이에 바로 진입해 음악을 즐길 수 있다. 한편 스포티파이 커넥트, 타이달 커넥트도 대응하고 있다. 무선 프로토콜의 경우 애플 에어플레이 2만 대응한다. 블루투스는 아마도 그들이 생각하기엔 음질 부분에서 만족스럽지 않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일부 사용자에겐 분명 아쉬울 수 있는 부분이다.

참고로 9000N은 무료 리모트 앱을 제공하는데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인터페이스와 UI 디자인을 보였다. 나의 예상은 맞았다. 바로 루민(Lumin)의 그 플랫폼과 거의 동일하다. 에소테릭처럼 오디오랩도 루민 앱을 라이센스 받아 사용하고 있다. NAD, 사이러스 등 자체 스트리밍 플랫폼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경우 결단력 있게 이런 파트너쉽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다.

숨겨진 꿀기능, audio cast

그리고 루민의 플랫폼을 사용하기 때문에 가능한 기능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오디오 캐스트(audio cast)라는 무선 전송기능인데, 안드로이드의 버블UPNP앱을 일종의 통로로 사용하여 기기의 모든 사운드를 16bit 44.1kHz 또는 48kHz로 재생할 수 있다. 이는 9000N의 공식정보에는 없으나, 루민의 제품들이 얼마 전에 업데이트로 이 기능을 지원하기 시작했고 9000N 역시 같은 플랫폼을 사용하기 때문에 빠지지 않고 그대로 탑재되었다.

사용방법은 기존의 연결방식과는 다르게 조금 독특한데, 버블UPNP앱의 설정에서 audio cast 기능을 켜고, 연결기기 목록에서 9000N을 선택, 다시 연결기기 목록의 audio cast를 켜면 작동이 시작되고 사운드를 내는 모든 앱의 소리를 9000N으로 재생할 수 있다. 쉽게 말해 안드로이드 기기의 사운드를 버블UPNP앱이 캐치해서 9000N에 쏴주는 방식이라고 보면 된다. 이는 무선 연결을 지원하지 않는 라디오앱들이나 전용 커넥트 기능이 없는 멜론, 벅스, 지니 등의 국내 스트리밍 서비스, 사운드 전용 연결은 지원하지 않는 유튜브앱 등등 사용하기에 따라 상당히 유용하게 쓰일만한 기능이다.

9000N 내부
ESS ES9038PRO

한걸음 더 들어가서 내부 설계는 전통적인 오디오랩 설계 패턴을 취하고 있다. 한 쪽 편에 커다란 토로이달 트랜스포머를 투입해 리니어 전원부로 설계해놓고 있으며 중앙 기판에 레귤레이션, 오디오 시그널 증폭단(OP275G), 그리고 XMOS 기반 USB 입력 보드를 마련해놓고 있으며 리눅스 기반 시스템으로 Quad Arm® Cortex®-A53 core MCU를 기반으로 네트워크 스트리밍 플랫폼 전체를 컨트롤하고 있다. 내장 DAC는 ESS 테크놀로지의 ES9038PRO로 오디오랩의 레퍼런스다운 칩셋을 선택한 모습이다. 이로써 9000N은 PCM의 경우 32bit/768kHz, DSD의 경우 DSD512까지 처리 가능하며 MQA 디코딩도 빼놓지 않고 있다.

청음

오디오랩 테스트는 실로 오랜만이지만 왠지 수 년 만에 보아도 마치 어제 본 듯한 오랜 친구 같은 느낌이다. 입문 시에 많이 써보았고 가끔 서브시스템으로도 써보면서 항상 착한 이미지가 심어져 있었기 때문이리라. 매칭에는 오디아플라이트 FL Three S 인티앰프를 연결했고 스피커는 매지코 A1을 사용해 그 음질, 성능을 파악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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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키 리 존스 – Dat dere

오디오랩은 오래 전부터 들어온 기억 속의 그 밸런스를 다시 기억에서 상기시킨다. 대역 밸런스가 중저역 쪽으로 가라앉아 차분하고 절대 엷게 흩날리거나 얄팍한 사운드를 내지 않는다. 리키 리 존스의 보컬은 특히 중역대에 동글동글한 촉감이 손끝에 만져질 듯 부드럽고 유연하다. 로벤 포드의 나일론 기타가 동동거리며 적당히 탄력적이고 색소폰은 담백하고 조용히 울부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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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 카체 – Swing piece
오디오랩의 내장 DAC는 단순히 네트워크 플레이어에 덤으로 주어진 성능을 넘어선다. 실제 테스크해온 1-2백만원대 네트워크 플레이어의 음질과 비교를 불허한다. 피아노의 타건 어택에서부터 그 투명도, 다이내믹 컨트라스트가 상당히 높다. 한편 가장 배음 구조가 복잡한 관악기도 블로윙이 싱싱하고 시원시원하며 그 표면 질감이 상상이 될 정도로 섬세한 약음, 잔향 표현이 빼어나다. 음향 테스트를 멈추고 음악을 듣고 싶어진다.
Fink – Trouble’s what you’re in
오디오랩은 앰프가 되었거나 소스 기기가 되었거나 솔직 담백하게 음악을 풀어낸다. 독자적인 디지털 알고리즘이나 FPGA를 통하지 않아 되레 꾸밈이 없고 네추럴한 편인지도 모르겠다. 각 악기를 분해한 후 자신들의 입맛대로 재조립하지 않고 본래 음원에 담긴 정보를 가감 없이 흘려보낸다. 특히 저역은 일부러 직조한 느낌 없이 두툼하고 묵직한 에너지로 타격감을 뽐낸다. 어찌 보면 요즘 사용해본 기기들 중 ESS칩을 사용한 저가의 DAC들과 반대편에 선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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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버그 심포니 오케스트라 – 베토벤 : 교향곡 3번

필자의 레퍼런스 시스템과 비교해보면 반오디오보다는 피치가 높지만 코드 Hugo TT2에 비하면 낮은 편이다. 중역대가 도드라지고 저역은 묵직한 편이며 코드 같은 도회적이고 현대적인 소리보단 되레 차분한 맛이 R2R 과 더 가깝다. 따라서 클래시컬 음악 듣는 데도 꽤 강점을 보인다. 낮은 무게 중심에 힘차고 솔직 담백한 사운드는 깊은 음악적 여운을 동반한다. 베토벤 교향곡 3번을 들어보면서 확실히 리니어 전원부에 믿을만한 최신 칩셋, 전통적인 출력단 설계 등 전통적인 설계가 빚어내는 힘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총평

알다시피 오디오랩 같은 경우 IAG라는 거대 오디오 그룹의 일원으로서 그들만의 시스템을 서서히 구축해나갔다. 특히 합리적인 가격대의 DAC를 내놓은 바 있어 기대주 중 하나였다. 바로 M-DAC라는 모델로 지금도 처음 M-DAC을 들었을 때의 감흥을 잊을 수 없다. 8000A, 8000P, 8000Q 시절 그리고 한 때 태그 맥라렌이라는 이름으로 항상 가격 대비 킬러 아이템을 내놓았던 그들의 저력은 분명했다. 과연 어떤 플랫폼 위에서 네트워크 플레이어를 내놓을지 관심 있게 지켜봐왔다. 그리고 그 결정판이라고 할만한 제품이 하나 출시되었다. 바로 9000N이 그 주인공이었고 예전의 그 오디오랩에서 듣던 오디오랩 사운드의 매력을 다시 확인했다. 9000N은 네트워크 스트리밍으로 가는 비상구 같은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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