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음악 스트리밍의 민주주의
음악 등 문화 컨텐츠는 누구나 공평하게 즐길 수 있어야 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했다. 지금 한 달에 몇 만 원이면 전 세계 수억 개의 음악을 시간이 허락하는 한 즐길 수 있는 건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니다. 음원이 유형의 저장 매체에 담겨 유통될 때 음악은 돈이 있어야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학생 시절 몇 달을 기다린 끝에 발매된 친애하는 가수의 신보 CD를 보고도, 돈이 없어 발길을 돌렸던 때도 있었다. 힘겹게 얻은 것이 갖는, 빛나는 가치의 우월 같은 것은 한낱 무력한 자위가 되어버린다.
‘부자들은 미술품을 벽에 걸었지만 가난한 이들은 바닥에 미술 작품을 쌓아놓는다. LP는 가난한 이들의 미술 소장품이다’. 영화 ‘힙노시스 : LP 커버의 전설’에서 언뜻 지나치면 흘러나온 이 말은 문화 컨텐츠의 비대칭, 불공평에 대한 아이러니다. 언제부턴가 음악이 민주적으로 공급, 유통, 향유되는 시대가 된 것은 디지털 덕분이긴 하다. 엄밀히 말하면 CD 시절부터 복제가 가능하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저작권 침해 행위였다. 음악이 공평하게 모든 이들에게 주어진 것은 온라인 음원 스트리밍이 음악 감상 방식으로 자리 잡으면서부터다. 학생이라고 하더라도 용돈 조금만 아끼면 거의 무한대의 음악의 바다로 입장할 수 있는 티켓이 주어진다. 음악 감상의 민주주의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스트리밍과 앰프를 하나로
여러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는 모두에게 거의 동등한 주권을 선사했다. 하지만 여기서 끝난다면 서운하다. 하드웨어라는 장벽이 하나 더 남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합리적인 가격대의 이어폰, 헤드폰으로 들어도 그만이다. 그러나 하이파이 오디오는 어렵다. 일단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음원을 네트워크 플레이어로 보내 주어야 한다. 전송 프로토콜은 에어플레이, 블루투스, 구글 캐스트 등 무선 혹은 DLNA/UPnP, ROON 등 다양한 프로토콜을 사용해야 한다. 여기서도 끝이 아니다. 네트워크 플레이어에서 DA 변환한 신호를 충분한 크기의 신호로 증폭해 주어야 한다. 스피커를 구동할 수 있는 앰프가 필요하단 의미다.
시대는 이 두 가지 기능, 즉 음원을 받아 처리하고 아날로그 신호로 변환한 후 스피커를 구동하기 충분한 크기로 증폭하는 일을 하나의 기기에 담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드웨어 부문에서 보면 물리적 실물이 없는 음원 시대가 소스 기기의 크기를 축소할 수 있게 해주었고 클래스 D 증폭 기술이 발전하면서 고효율, 소형화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제 과거엔 상상도 못했던 컴팩트 올인원 앰프 하나만 있으면 음악 감상에 필요한 건 스피커뿐인 시대가 도래했다.
WiiM Amp Pro
네트워크 스트리밍 앰프라고 명명된 오디오의 새로운 장르는 불길처럼 번져갔다. 네임, 린, NAD, 캠브리지 등 다양한 브랜드가 이 카테고리를 정복해나갔다. 와중에 WiiM이라는 신생 브랜드가 화두를 던졌다. 고가로 일관하던 하이파이 브랜드의 제품군들 사이에서 합리적인 가격대에 누구나 접근 가능한 인터페이스와 사용자 편의성으로 무장한 스트리밍 앰프를 내놓은 것. WiiM은 Pro, Pro Plus 및 WiiM Ultra 등 네트워크 플레이어에만 국한하지 않고 WiiM Amp까지 출시하면서 네트워크 스트리밍 생태계에 독자적인 영토를 확장해나갔다. 네트워크 관련 부문에서 오랜 시간 쌓아온 기술과 노하우는 막강한 성능으로 대중들을 감동시켰다.
디자인/인터페이스
전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은 WiiM Amp에 이어 WiiM은 고삐를 늦추지 않고 바로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바로 WiiM Amp Pro가 그 주인공이다. 가로 19cm, 높이 6.6cm, 깊이 21.7cm의 이 컴팩트 사이즈의 WiiM 제품은 프로 버전으로 기존 버전의 아성을 스스로 무너뜨리려는 듯 보인다. 아담한 박스를 열면 야무지며 세련된 본체가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애플 TV의 사이즈를 키워놓은 듯한 모습이다. 알루미늄 섀시의 헤어라인이 차분하고 고급스러운 늬앙스를 풍긴다. 전면엔 좌측에 LED, 그리고 우측으로 볼륨 노브가 전부며 전용 리모컨을 지원한다. 섀시는 심플해 보이지만 하단에 방열을 통한 온도 관리를 위해 대책을 세워놓았다. 알루미늄 및 구리 그리고 꿈의 신소재로 각광받고 있는 그래핀을 조합해 작은 면적에서도 효율적인 방열이 가능하다.
WiiM Amp Pro는 기본적으로 쿼드코어 A53을 CPU로 사용하며 DRAM은 512MB, 플래시 메모리는 512MB를 사용하는 일종의 컴퓨터 같은 제품이다. 이를 통해 내부 디지털 프로세싱과 기능을 모두 컨트롤한다. 후면으로 가면 아날로그 RCA 입력 한 조 외에 랜, 광, USB(A), 그리고 HDMI ARC 입력단이 보인다. 일반적으로 이더넷 포트에 랜 케이블만 연결해 네트워크 스트리밍만 즐기는 데 사용할 수도 있지만 외부 기기를 연결해 사용하도록 배려한 것. 특히 HDMI ARC 입력은 TV의 HDMI ARC 출력과 연결하면 TV 사운드를 WiiM Amp Pro에 연결한 하이파이 스피커로 즐길 수 있다. 물론 책상에서도 HDMI ARC 출력을 지원하는 모니터와 연결해 간단히 PC-FI 시스템을 꾸릴 수 있다.
내부 설계 : 디지털 부문
한 발자욱 더 들어가 내부 설계를 살펴보자. 일단 디지털 부문, 즉 네트워크 플레이어 부문은 이전보다 더욱 향상된 소자를 사용하고 있다. 바로 ESS 테크놀로지의 ES9038Q2M을 사용해 이전에 9018K2M을 사용했던 WiiM Amp보다 더욱 향상된 SN비와 해상도를 기대할 수 있다. 실제로 WiiM 본사에서 발표한 스펙에서도 SN비가 120dB, THD+N(전 고조파 왜곡)이 –105dB로 대폭 향상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참고로 입력 가능 해상도는 PCM 기준 24bit/192kHz로 대응하지 못한 포맷은 거의 없다고 보면 맞다.
대응하는 전송 프로토콜은 매우 다양해 이 역시 현존하는 거의 모든 유/무선 네트워크 스트리밍에 대응한다. 예를 들어 스포티파이 커넥트, 타이달 커넥트 등은 물론 DLNA/UPnP를 지원하는 모든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다. ROON 지원은 기본이며 블루투스 5.3을 지원해 기존보다 더욱 빠른 데이터 전송 속도와 거리를 보장한다.
이 외에도 ‘WiiM Home’ 전용앱을 통해 10밴드 EQ 및 룸 보정, 갭리스 재생 등 세심한 부분까지도 배려한 모습에서 네트워크 소프트웨어 전문 그룹다운 면모가 반짝인다. 다만 이전버전과 달리 WiiM Ultra처럼 에어플레이를 지원하지 않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내부 설계 : 앰프 부문
앰프 부문은 기본적으로 클래스 D 증폭을 택하고 있다. 작은 사이즈에서 강력한 출력과 스피커 제어력을 가지려면 선택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다. WiiM Amp Pro는 기존 버전과 동일하게 텍사스 인스트루먼츠의 TPA3255를 사용해 이 작은 사이즈에서 8옴 기준 채널당 60와트, 4옴 기준 120와트를 얻고 있다. 하지만 WiiM은 이 칩셋에 더해 PFFB, 즉 포스트 필터 피드백(Post-Filter Feedback) 기술을 사용했다.
텍사스인스트루먼트사의 PFFB 리포트
출처 : Texas Instruments I / 원문보기
클래스 D 증폭은 일반적으로 출력단에 LC 필터를 사용해 스위칭 노이즈를 제거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심각한 고주파 노이즈로 인해 가정용 오디오에는 사용할 수 없게 된다. WiiM은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프리 필터 피드백(Pre-Filter Feedback) 방식을 사용하지 않고 신호가 필터를 거친 이후 PFFB 회로를 반영해 더욱 정밀하게 신호를 보정할 수 있게 했다. 이를 통해 출력 임피던스를 낮추어 스피커 제어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물론 고조파 왜곡 및 IMD 수치를 드라마틱하게 향상시켰다. 스피커의 부하 임피던스 변화에 덜 민감해지는 효과도 있으므로 주파수 응답 한층 평탄해지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더 깨끗하고 명료하며 왜곡 없이 균형 잡힌 사운드를 들을 수 있다는 의미다.
셋업, 청음
이번 테스트에선 WiiM Amp Pro에 포커스를 맞추되 EQ 등 설정을 기본 세팅에서 건들지 않았다. 테스트에 활용한 제품은 오직 스피커로서 케프 LS50 Meta를 사용했다. 필자의 시청실보단 자택의 방에서 테스트하는 것이 더 알맞은 세팅이라고 판단되어 WiiM Amp Pro를 집으로 데려왔다. 여기에 운용 중인 스피커 중 가장 착색이 덜하고 앰프와 소스 기기의 특색을 잘 드러내는 스피커인 LS50 Meta를 선택했다.
바네사 페르난데즈 – Billie jean
핑크 – Maker(Acoustic)
브라이언 브롬버그 - The Saga Of Harrison Crabfeathers
피아노 타건은 깨끗하게 뻗어 올라간다. 하지만 그 끝이 완전히 끝 간 데 없이 올라가지 않고 매우 깔끔하게 마무리된다. 여러 면에서 이런 깍쟁이 같은 모습이 발견되는데 이 가격대에선 빈틈을 찾기 힘들게 조율된 모습이다. 클래스 D 증폭치곤 그리 얇거나 거친 느낌 없이 매끄러운 음색을 보여준다. 저역 드라이빙이 까다로운 ATC 같은 스피커가 아니라면 일반적인 북셀프 제어에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소리의 중심이 높지 않고 중립적이며 빠른 반응 속도에 적막한 배경과 입체감은 LS50 Meta이 태생적으로 모니터 스피커라는 것을 다시 상기시켜준다.
총평
여러 특성으로 볼 때 전작에서 여러 업그레이드가 감지된다. 기술적으로는 DAC 칩셋의 변화로 인한 해상도, SN 비 등의 상승이 예상되었고 실제로 내가 기억하는 전작 WiiM Amp보다 한결 나아진 모습이다. 더불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포스트 필터 피드백(Post-Filter Feedback) 기술의 도입이다. 스피커의 부하에 영향을 덜 받으면서 뛰어난 주파수 응답을 보여주는 것이 청감상 포착된다. 가공하지 않은 날 것의 싱싱함보단 절제된 담백함이 돋보인다. 라이브 녹음도 마치 스튜디오 녹음처럼 반듯하고 깔끔하게 표현해준다. 군더더기란 눈을 치뜨고 찾아봐도 없다.
더불어 전 고조파 왜곡이나 상호 변조 왜곡 등의 향상 덕분인지 각 악기들의 음색이 더 개성 있게 표출되었다. 특히 이런 부분들은 대편성 녹음에서 더욱 크게 감지된다. WiiM Amp Pro는 한결 진화한 WiiM의 미래에 대한 예고편이다. 이제 Vibelink 등 신제품까지 예고된 상황으로 그저 편의성 위주의 올인원을 넘어 음향적으로 한층 진보한 성숙기에 접어들고 있는 듯하다. 이 가격대 올인원 스트리밍 앰프에서 경쟁자를 찾기란 매우 힘든 일이다. WiiM Amp Pro는 WiiM이 쏘아올린 오디오 생태계에 방점을 찍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