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헤레틱 AD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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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생전 처음보는 브랜드의 리뷰 의뢰가 들어왔습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 소재한 헤레틱 라우드스피커스 컴퍼니(Heretic Loudspeakers Company, 이하 헤레틱)라는 스피커 제조사였죠. 잠시 공식 홈페이지에 가서 살펴보니 생긴 게 과거 알텍(Altec)을 빼다 박은 게 영 탐탁찮았습니다. “아니, 언제적 알텍이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물론 사람이건 물건이건 생김새만 보고 경솔하게 판단하면 안 되는 건 알지만 그래도 영 관심이 가지 않아서 대충 훑어보고는 이내 브라우저 창을 닫아버렸습니다. “실제로 보면 또 느낌이 다르겠지”하는 위안을 하며.
일주일이나 지났을까요? 스피커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추적추적 내리는 빗줄기를 뚫고 청음실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래도 생전 처음보는 브랜드를 만나본다는 생각에 도착지에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뛰었죠.
드디어 도착해서 청음실 문을 열자 헤레틱 AD614가 모습을 보였습니다. 디자인에 대한 관점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정사각에 가까운 애매해 보이는 셰이프에 썩 고급스럽지 않은 마감, 그리고 크게 고민하지 않은 듯한 외관 디자인까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캐비닛을 두드려보니 통울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BBC 계열의 스피커 보다도 텅텅 거리는 게, 무슨 합판으로 만든 것 마냥 실망스럽기까지 했죠. 굳이 마음에 드는 부분을 찾자면 쿨해보이는 로고 뱃지 정도랄까요? 그마저도 과거 웨스턴 일렉트릭(Western Electric)에서 착안한 걸로 보이지만요.
속으로 “이번 리뷰는 고사할까?”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지만 이왕 왔으니 들어나 보자는 마음으로 아무런 기대감 없이 포커싱을 잡기 위해 에바 캐시디(Eva Cassidy)의 Autumn Leaves를 틀었습니다. 그리고는 리뷰어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앉은 채로 망부석이 되어 한참동안 음악에 푹 빠졌죠. 너무 예상 밖의 소리가 났냐고요? 아뇨. 소리는 생긴 대로였습니다. 다만 너무 듣기 좋았던 거죠.
디자인
한 시간쯤 지났을까요? 정신을 차린 저는 그제서야 부랴부랴 헤레틱에 대해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공식 홈페이지에는 설립년도가 나와있지 않아 이런저런 자료들을 찾아보다가 헤레틱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발견했습니다. 첫 게시글이 2021년 3월 6일이더군요. 아마도 2020년 혹은 2021년초쯤에 설립됐나 봅니다. 설립자는 로버트 게이버리(Robert Gaboury)라는 인물로, 젬 오디오(Gemme Audio), 아르테루스(Arteluthe)사의 스피커를 설계한 오디오 엔지니어였습니다. 즉, 따끈따끈한 신생이지만 역량이 증명된 베테랑에 의해 새롭게 설립된 브랜드라는거죠.
헤레틱에서 현재까지 출시된 건 Model A, AD612, AD614까지 총 3종으로, 모두 알텍의 명기들을 오마주한 모델들입니다. Model A는 1956년에 출시되어 20여년간 가장 인기 있는 극장 및 상업용 스피커로 활약한 Voice of the Theatre 시리즈의 A7에서, AD612와 AD614는 비틀즈가 모니터 스피커로 사용한 걸 계기로 60년대에 큰 인기를 끌었던 Utility 시리즈의 612와 614에서 모티브를 따왔죠.


# 트랜스듀서
현대적인 하이엔드 스피커를 설계하던 로버트 게이버리가 뜬금없이 알텍에 꽂힌 이유는 동축 유닛에 대한 애착 때문이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죠. “당신이 이미 최고의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할지라도 동축 스피커 한 조는 반드시 필요합니다(Maybe you already own the best, but you still need a pair of those coaxial monitors).”
잘 아시다시피 동축 유닛이란 2개 이상의 유닛을 같은 축에 두어 설계한 드라이버입니다. 여기서 로버트 게이버리가 말하는 동축 모니터 스피커란 풀레인지처럼 단일 동축 유닛으로 설계한 스피커를 뜻하죠. 그럼 이런 스피커의 특징은 뭘까요? 일단 음파가 단일 지점에서 방출되는 만큼 시간축 도메인 관점에서 유리합니다. 일관적이고 자연스러운 소리를 자랑하죠. 반면 주파수 도메인에서는 다소 불리합니다. 특히 우퍼의 경우, 구경이 커지면 선형적인 움직임이 어려워지고 그에 따라 위상이 흔들리기도 하죠. 따라서 스테이징, 그 중에서도 교향곡처럼 여러 악기들이 층층이 레이어를 쌓는 장르에서는 비교적 약한 면모를 보이는 반면, 간소한 편성의 기악곡, 재즈, 보컬 곡에서는 비할 수 없는 매력을 발휘합니다.
알텍의 전성기 스피커들이 TS 파라미터(Thile-Small Parameter)와 같이 스피커의 특성을 수학적으로 해석할 툴이 없는 시기에 출시되어 특별한 인클로저 기술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많은 매니아층을 보유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죠. 특히 알텍의 604 듀플렉스(Duplex)라는 동축 유닛은 1944년에 출시된 이래로 북미 녹음 스튜디오에서 표준으로 사용되었을 뿐 아니라 20여년 간 버전업을 거듭하면서 동축 유닛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로버트 게이버리는 AD612와 AD614를 위해 ‘303 헤레틱 동축 트랜스듀서(Heretic Coaxial Transducer)’라는 유닛을 새롭게 개발했습니다. FaitalPRO라는 이탈리아 유닛 제조사에 특주해서 제작된 이 동축 드라이버는 12인치 구경으로, 삼중 롤 에지로 둘러 쌓인 페이퍼 콘이 유리 섬유 보이스 코일 포머를 통해 페라이트 자석으로 구동되는 구조입니다. 중앙에 반투명한 직조 섬유로 이루어진 더스트캡의 정체는 사실 강력한 네오디뮴 자석으로 구동되는 컴프레션 드라이버 트위터입니다. 진동판은 슈퍼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으로 불리우는 신소재 중 고주파에 대한 저항이 적은 폴리에텔에텔 케톤(PEEK: Polyetherether ketone)으로 제작되었고, 짧고 두꺼운 알루미늄 혼을 통해 방사되죠.
# 캐비닛
인클로저로 넘어가보면 가로 48, 세로 65, 깊이 37cm로, 가로폭이 넓고 깊이는 좁은 형태를 띄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현대적인 스피커들이 좁은 배플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배플 스텝 보정(BSC: Baffle Step Compensation) 필터를 사용하여 저음역대를 증가시키는 반면, AD614는 넓은 배플과 12인치 대구경 유닛 덕에 이 회로를 사용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하는데요, 아무래도 저음역대가 보다 자연스럽게 재생되는데 일조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전면 포트입니다. 덕트의 튜닝을 통해 저음역대를 방사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베이스 리플렉스와 달리, 이 포트는 별도의 덕트관 없이 전 대역이 자연스럽게 빠져나가는 방식을 취하고 있죠. 이렇게 배플이 넓고 후면 포트가 없는 스피커들은 뒷벽에 공간을 두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 있는데요, 제조사 측에서도 역시 뒷벽에 밀착해서 사용하는 걸 권장하고 있습니다.
소재는 실제 합판으로, FSC 인증을 받은 프리미엄 품질의 캐나다산 12겹 자작나무 합판이 사용되었습니다. 제조사에 따르면 에너지를 흡수하는 MDF와 달리 음악성, 음색, 펀치감이 우수하고 생생한 사운드를 재생하는데 유리하다고 하네요. 색상은 화이트워시, 브라운, 그리고 블랙을 제공하는데, 이 중 화이트워시와 브라운은 식품 등급의 100% 반투명 아마인유와 순수 밀랍으로, 블랙은 친환경 수성 아크릴로 마감한다고 합니다. 환경까지 고려하는 제조사인거죠.
# 크로스오버
유닛과 인클로저가 기존 알텍 Utility 시리즈를 개량한 거라면, 크로스오버는 완전히 다른 방식입니다. 알텍의 경우 일반적인 버터워스(Butterworth) 2차 필터 방식으로 설계되었는데요, 이 방식은 크로스오버 주파수 전 후 3옥타브 구간에서 차단되지 않은 신호가 전달되어 발생되는 신호 전력의 중첩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크로스오버 주파수에 보정 계수를 적용한 보정 크로스오버를 구축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기 때문에 중첩 현상이 발생하는 구간 즉, 보컬 대역이 상대적으로 강하고 빅 마우스 현상이 발생하게 되죠.

반면 AD614의 크로스오버 네트워크는 일반적으로 패시브 네트워크에서 사용하지 않는 링크위츠 라일리(Linkwitz-Riley) 2차 필터 방식으로 설계되었습니다. 링크위츠 라일리는 우퍼와 트위터가 직렬로 연결되어 있어 각각 -3dB의 이득을 갖게 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크로스오버 포인트의 게인이 0dB로 수렴되죠. 따라서 앞서 언급한 보컬 대역의 강조나 빅 마우스 현상이 해소되고, 완만하게 변화하는 위상 응답과 함께 평탄한 진폭 응답을 갖는 올 패스 필터(All-pass filter)처럼 동작하여 자연스러운 소리를 갖게 된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2차 직렬 크로스오버는 왜 일반적으로 사용되지 않을까요? 그 이유는 소프트웨어로 모델링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수많은 청음 테스트와 거듭되는 시행착오가 수반되고, 이로 인해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감행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헤레틱은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네트워크에 사용된 부품 역시 높은 게이지의 솔렌 공심 코일 인덕터, 문도르프 커패시터, 비유도성 고전력 저항, 군용 등급의 PCB 기판, 뉴트릭(Neutrik)사의 절연 동(Copper) 재질의 바인딩포스트까지 최신의 최고급 부품들로, 높은 성능을 기대해볼 수 있겠고요.

# 스탠드
마지막으로 AD614는 플로어스탠딩이 아닌 스탠드마운트 스피커로, 바닥에서 일정 공간을 띄웠을때 비로소 최적의 성능을 발휘한다고 하는데요, 이에 맞춰 수입원에서 스탠드를 자체 제작하여 공급한다고 합니다. 직접 테스트해 본 결과 옵션이 아닌 필수라고 할 정도로 그 효과가 크니, 구매하실 분들은 필히 함께 구비하시기를 권장 드립니다.
사운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전반적인 사운드 성향은 생긴 대로입니다. 사라 맥라클란(Sarah Mclachlan)의 Surfacing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Angel을 들어보면 넓은 배플과 덕트리스 전면포트를 지닌 캐비닛은 소리를 응축시키거나 응어리짐 없이 굉장히 쉽게, 술술 이탈시키고 터치 역시 순해서 청자를 스트레스 없이 음악에 빠져들도록 인도합니다. 페이퍼 콘과 PEEK 소재의 트위터 조합은 투명하면서 동시에 따스하고 도톰하며 목질감이 느껴지는 음색을 선사하고요. 무엇보다 칭찬하고 싶은 건, 12인치 대구경 유닛에 알텍의 외형을 띄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빅 마우스 현상이 생기지 않는다는 점인데요, 링크위츠 라일리 2차 직렬 크로스오버 설계가 빛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빅 마우스 현상은 생기지 않지만 무대는 꽤 포워딩하게 형성됩니다. 또한 대구경답게 굉장히 풍성한 배음을 만들어내죠. 가령 힐러리 한(Hilary Hahn)이 연주한 바흐 바이올린 협주곡 제2번 E장조, 1악장 알레그로(Allegro)를 들어보면, 바이올린 소리가 약간 도톰하고 울림이 깊으며 보다 풍성하고 다채롭게 들리는 게, 바이올린 크기가 마치 (최장 사이즈인 4/4를 넘어) 5/4가 된 듯한 인상을 줍니다. 활이 현을 그을 때 나는 마찰음은 한층 줄어들어 훨씬 덜 자극적으로 느껴지고요. 결과적으로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투명한 음색, 포워딩하게 형성되는 무대, 그리고 굉장히 풍성한 배음의 조합은 실연을 듣는 것 같은 생생한 현장감과 거기서 비롯되는 감흥을 스트레스 없이 여유롭게 전달합니다.
다음으로는 취약점을 파악하기 위해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Herbert von Karajan)이 지휘하고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연주한 드보르자크 교향곡 제9번 E단조 “신세계로부터” 중 4악장 알레그로 콘 푸오코(Allegro Con Fuoco)를 선곡했습니다. 먼저 재생 주파수 대역은 스펙 상으로 45Hz-22kHz, 실제 청감 상으로는 50Hz-20kHz 정도로 다소 제한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 부분은 크로스오버 설계에서 비롯된 거라 비난하기 어렵지만, 인클로저 용적을 고려했을 때 아쉬움이 남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다만 하한선까지의 순도는 매우 높고 자연스럽기 그지없었으며, 매우 풍성하기 때문에 저음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세밀한 표현이나 마이크로 다이내믹스와 같은 디테일도 현대적인 하이엔드 스피커 대비 약간 미흡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스테이징 역시 무대의 깊이와 악기 간 분리도가 조금 아쉬웠고요. 대역간 밸런스는 대역이 약간 좁고 음이 도톰하기 때문에 중역이 살짝 부풀은 것처럼 들릴 여지가 있으나 자세히 들어보면 고른 편이고, 토널 밸런스 역시 이질감 없이 자연스러웠습니다.
이번에는 재즈로 눈길을 돌려 데이브 브루벡 쿼텟(Dave Brubeck Quartet)의 Time Out 앨범에 수록되어 있는 Take Five를 틀어보았습니다. 시작부터 공간감과 현장감이 넘치는 조 모렐로(Joe Morello)의 드럼 소리, 변칙적인 5/4박자를 경쾌한 리듬감으로 소화하는 데이브 브루벡의 피아노 연주, 그리고 투명하면서 약간은 멜랑콜리한 음색이 풍성하고 다채롭게 울려퍼지는 폴 데스몬드(Paul Desmond)의 섹소폰까지, 정말 놀랍도록 좋았습니다. 재즈를 이렇게 좋게 들려준 스피커가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볼 정도로 말이죠. 뒤이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재즈 레파토리를 쭉 들으면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바로 “스피커가 그려내는 게 아니라 스피커를 통해 자연스레 재현되고 있기 때문”이었죠. 재즈만큼은 AD614가 제가 경험했던 수많은 스피커 중 손꼽을 정도로 발군이었습니다.

마치며
AD-614는 기본적으로 청자의 심장을 쥐락펴락, 염통을 쫄깃쫄깃하게 만드는 타입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소리를 굉장히 쉽게 술술 이탈시키는 순한 성향의 스피커죠. 음색 역시 따스하고 도톰하며 목질감이 잘 느껴지고요. 한 마디로 스트레스를 주지 않고 여유롭다고 할까요? 하지만 동시에 투명하고 순도가 높으며 무대가 포워딩하게 형성되기 때문에 답답하게 느껴지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굉장히 풍성한 배음은 자연스레 재현되는 공간감과 현장감을 자아내죠. 이러한 AD614의 음색적 특성들은 스테이징이나 디테일에서 아쉬웠던 부분을 잊을 만큼 엄청난 시너지를 내며 그 어떤 스피커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매력을 발산합니다.
한줄평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용납할만한 수준의 단점과 특출난 장점을 지닌 매력만점의 스피커

헤레틱 AD614
장점 | 단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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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목 | 별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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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 기능 | ![]() |
사운드 성능 | ![]() |
사운드 매력 | ![]() |
총점 | ![]() |

written by 마누
photo by 이동훈
제품사양
헤레틱 AD61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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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입 | 2웨이 동축 모니터스피커 |
주파수 응답 | 45Hz – 22kHz |
일반적인 실내 응답 | 35Hz – 20kHz |
드라이버 | 트위터, 미드레인지 : 1인치 동축 압축 드라이버 베이스 : 12인치 고출력 트랜스듀서 |
크로스오버 | 1.7kHz |
감도 | 97dB @ 2.83V @ 1M. |
임피던스 | 8옴 |
권장앰프출력 | 3 – 300W |
구조 | FSC 12겹, 자작나무 합판 |
마감 | 아크릴 블랙 / 화이트 워시 / 브라운 |
크기 (WxHxD) | 48 x 65 x 37cm |
무게 | 20kg |
수입원 | SP Audio https://spa.ideoti.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