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센트 SV-228
영상 리뷰
러빙 빈센트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그의 그림은 그림이 그려진지 백년이 훌쩍 넘어 2백년이 가까워졌어도 여전히 빛나며 세상을 밝히는 듯했다. 2017년 개봉된 ‘러빙 빈센트’에선 그의 그림이 다시 태어나 온전히 관람객의 눈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아름답게 밝혔다. 그러나 그의 빛나는 그림 뒤에 그의 삶은 너무도 고단했다. 살아 있을 때 단 한 점의 그림을 팔았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운명을 달리했다. 그의 죽음 후 얼마 지나지 않은 그 때 극 중의 아르망은 빈센트의 그림을 너무나 사랑했던 아버지의 부탁으로 빈센트가 살았던 그 곳으로 가 죽음의 배경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의 연인과 주치의 등 빈센트를 둘러싼 모험이 시작된다. 그 끝엔 과연 어떤 진실이 기다리고 있을까?
영화 ‘러빙 빈센트’를 보면 여러 만감이 교차한다. 단지 나의 작은 집에 그의 그림이 무려 두 점이나 걸려 있다는 것 외에도 인간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머리 속을 헤집어버린다. 예를 들어 빈센트 반 고흐의 자화상에서 귀를 자를 모습을 기억하는가? 압생트라는 술을 마시고 그런 끔찍한 일을 벌였다는 이야기로 유명하다. 누구도 흉내조차 내지 못할 만큼 로토스코프 기법으로 빚은 그림들은 마치 그 두텁게 덧칠된 물감만큼이나 인생의 깊이를 통찰해내고 있는 듯 지금도 액자 안에서 꿈틀거리고 있다.
빈센트 오디오
영화 ‘러빙 빈센트’, 더 나아가 인간 빈센트 반 고흐가 갑작스레 생각난 것은 어이없게도 빈센트 오디오의 앰프 하나를 받아드는 순간에서였다. 1998년 독일에서 피아난 음악과 오디오에 대한 열정은 ‘T.A.C’라는 회사로부터 시작되었다. 주로 앰프를 만들어내던 그들은 트랜지스터 그리고 진공관 등 증폭 소자를 편견 없이 자유자재로 다뤘다. 기존의 빈티지 마란츠, 매킨토시 등 기성 브랜드의 회로에 영향 받지 않았으며 절대 답습하기를 피했다. 대신 그들은 꾸준한 연구, 개발을 통해 나름대로 독창적 회로를 개발해서 새로운 시대에 정면으로 맞섰다.
내게 빈센트 오디오는 오래된 과거다. 10년도 한참 더 된 이야기로 적당한 파워앰프를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앰프가 빈센트 오디오의 파워앰프 SP-993이었다. 채널당 200와트 출력에 거대한 몸집, 그리고 마치 전성기 크렐이나 마크 레빈슨의 내부 설계를 보는 듯한 정공법 설계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소리는 어떤 밀폐형 스피커도 제어할 수 있을 듯한 힘을 체험하게 해주었던 기억이 있다. 본격적으로 수입이 되었던 건 한참 후였다. 그리고 이후 프리앰프와 포노앰프 그리고 리뷰어로서 몇몇 진공관 앰프를 체험해나가면서 빈센트 오디오에 대한 경험을 쌓아 나가게 되었다.
빈센트 SV-228
오랜만에 마주한 빈센트 오디오는 사뭇 다른 디자인으로 바뀌어 있었다. 특히 이번에 리뷰를 진행하게 된 SV-228은 마치 1970년대 빈티지 리시버의 그것을 단박에 떠올리게 만들었다. 중앙엔 두 개로 나눠진 창을 통해 레벨 미터를 구현해놓아 음악에 따라 바늘이 너울너울 움직였고 은은한 불빛이 흘러나왔다.
한편 전면엔 여러 노브가 마련되어 있었다. 좌측으로는 입력 선택 노브가 있고 우측엔 볼륨 노브가 마련되어 있다. 레벨 미터 창 정 중앙에 전원 버튼이. 그리고 좌측으로 베이스, 우측으로 트레블, 즉 저역과 고역 레벨을 조정할 수 있는 노브를 설치해놓은 모습이다. 여기에 더해 톤 밸런스, 라우드 기능까지 여러 편의 기능을 탑재해놓은 모습. 좌측에 스피커 선택 버튼이 있는 것으로 보아 스피커 출력을 두 조 지원하는 앰프임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우측 끝엔 헤드폰 출력단이 마련되어 있었다.
또한 이 제품은 디지털 입력을 지원한다. 단, 광, 동축 등 두 조만 지원하고 있으므로 USB 입력을 통해 PC와 연결하려면 별도의 DDC를 필요로 한다. 참고로 광, 동축 출력이 가능한 네트워크 플레이어가 있다면 이 단자를 활용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다. 흥미로운 건 부속품에 안테나가 있다는 사실. 다름 아닌 블루투스(버전 5.0)를 지원하고 있다는 것인데 메인 기능은 아니지만 상황에 따라 간단히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 것으로 보인다.
증폭 관련 부분은 하이브리드 형태를 취하고 있다. 간단히 이야기해 입력, 프리앰프 부문에 진공관을 사용하고 이후 파워앰프 부문은 트랜지스터로 증폭하는 설계다. 사실 이러한 하이브리드 앰프는 설계가 까다로운 편으로 제대로 만들어내는 브랜드도 있는 반면 카운터포인트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진 브랜드도 꽤 있다. 그러나 잘 만들면 진공관 앰프의 윤기, 부드러운 촉감에 더해 트랜지스터 앰프의 강력한 힘과 스피커 제어력을 동시에 얻을 수도 있다. SV-228엔 입력 및 증폭에 6N4 진공관 한 개과 ECC82 두 개를 사용하고 있다. 이는 각각 12AX7 및 12AU7과 호환되는 형번의 진공관이다. 한편 파워 앰프 부문의 증폭엔 도시바 A1941을 사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요컨대 빈센트 오디오가 출시한 SV-228은 진공관과 트랜지스터 등 두 종류 소자를 적재적소에 활용한 하이브리드 진공관 인티앰프다. 이로서 출력은 8옴 기준 채널당 100와트, 4옴 기준으로는 채널당 180와트 출력을 갖고 있다. 한편 디지털 입력을 통해 WAV, FLAC, APE, LPCM, MP3, AAC, AC3, WMA 등 디지털 포맷에 대해 입력, 처리가 가능하고 블루투스에 대응하므로 여러 소스 기기 및 스마트폰과 연동해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청음
테스트에는 주로 Roon을 통해 타이달 음원을 청취했다. 스피커는 하베스의 P3ESR과 동사의 베이스 익스텐더 넬슨, 소스기기로는 루민의 P1 mini 네트워크 플레이어, 그리고 빈센트의 SV-228이 함께 했다.
조붕 - The moon represents my heart
스피커에 비하면 상당히 큰 청음 공간이어서 사실 걱정이 앞섰다. 그러나 하베스의 이 작은 북셀프 스피커로도 그리 부족하지 않게 공간을 채웠다. 볼륨 10시 정도에서 충분한 음압을 얻을 수 있었다. 전체적인 밸런스는 특정 대역으로 치우치지 않아 피로감을 만들어내지 않았으며 조붕 보컬의 토널 밸런스를 생생하게 전달해주었다. 트랜지스터 앰프지만 약간 진공관의 짝수차 배음이 첨가된 사운드다.
집시 킹스 – Inspiration
사실 청취 테스트를 진행할 당시 앰프의 스펙, 설계를 보지 않는 편이다. 선입견이 생길까봐서다. 역시 진공관을 사용한 하이브리드 앰프였다. 어쿠스틱 기타의 기음은 명료하지만 진공관의 짝수차 배음 및 쌍 삼극관 특유의 여운이 스며들어 있었다. 중, 고역은 딱딱하거나 거칠지 않고 부드럽게 그리고 촉촉한 촉감을 간직하고 있다. 고역은 살짝 롤-오프되어 피로감 없이 장시간 시청시에도 편안한 음악 감상 가능한 앰프다.

도널드 페이건 – Morph the cat
저역 제어에 관해 이 앰프는 여유롭고 부드럽게 스피커를 어르고 달래는 느낌이다. 엄청난 속도와 댐핑으로 스피커를 옴짝달싹 못하게 휘어잡기보단 적당한 힘으로 스피커의 잔향 특성을 자연스럽게 표현해준다. ‘Morph the cat’에서 드럼은 탄력감이 좋아 맛깔스럽게 너울거리며 하이 햇의 고역도 꽤 섬세하다. 가장 큰 특징은 중역대로서 높은 저역부터 낮은 중역대의 탄탄하고 질감 좋은 중, 저역 덕분에 일렉트릭 베이스 소리에 찰기기 넘친다.
에리히 쿤젤/신시내티 팝스 오캐스트라 - The magnificent seven
전체적으로 차분한 톤에 무게 중심이 낮은 편이며 특히 중역대가 돋보이는 소리다. 여기에 다이내믹스는 거시적인 표현 쪽에 강점이 있다. 아주 세밀하게 분해해 분석적으로 표현하는 쪽이 아니라 전체적인 밸런스와 음색적 촉감에 매력이 있는 앰프다. 그렇다고 너무 무른 편은 또 아니어서 대편성에서 커다란 관현, 타악은 제법 묵직한 펀치력을 선사한다. 중저가 트랜지스터 앰프에서 보이는 얇고 텅 빈 소리는 찾아볼 수 없다. 진공관의 촉촉한 질감과 트랜지스터의 밀도감이 적절히 타협된 소리라고 할 수 있다.
총평
빈센트 오디오의 이번 신제품 SV-228은 갑자기 급조해낸 인티앰프가 아니다. 이젠 설립된 지 26년차로 어엿한 중견 하이파이 오디오메이커로 성장하면서 축적된 노하우가 듬뿍 담겨 있다. 이는 SV-226, SV-226MKII, SV-227 그리고 SV-227MK 등 화려한 전작들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마치 진공관과 트랜지스터라는 개개의 서로 다른 물감을 섞어 음악과 음향을 하이파이 오디오라는 화폭에 멋지게 그려내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갈수록 클래스 D, 디지털 앰프가 득세하고 있는 요즘 이 가격대에 정통 클래스 AB 증폭에 더해 진공관과 트랜지스터의 화합을 통해 만들어내는 고전적 풍미는 확실히 매혹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