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이엔드 표상의 최초 트리클다운 프리 & 파워앰프

MARK LEVINSON

№ 5206, № 5302

500번대로 과거의 영광을 되찾은 마크 레빈슨의 최초 트리클다운 라인업 5000번대. 과연 브랜드 인지도를 향상시킬 호수인지, 아니면 가치를 하락시킬 악수인지, № 5206 프리앰프와 № 5302 파워앰프를 통해 살펴보자.
마누
이동훈

№ 5206 / № 5302

시작하며

지난 R-N2000A 리뷰에서 야마하가 전 세계 A/V 리시버 판매율 1위의 브랜드임에도 불구하고 자사의 하이파이 제품군에 있어서는 A/V리시버파가 아닌 정통 하이파이파의 길을 걸어왔다고 언급했죠. 하지만 이는 드문 경우로, 오디오 산업에서 일본의 이미지가 대량생산 & 박리다매임은 분명합니다. 이것이 나쁘다거나 폄하하는 건 결코 아닙니다. 덕분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합리적인 가격으로 오디오에 입문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반면 일본과 정 반대로 하이엔드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국가도 있습니다. 바로 미국이죠. 그럼 미국은 어떻게 하이엔드의 이미지를 갖게 되었을까요? 그 배경을 한 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1950~60년대는 서구권 국가들의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한 자본주의의 황금기였습니다. 선봉에 서 있던 미국 역시 예외는 아니었죠. 이런 이유로 이 시기를 미국 오디오의 전성기로 여기는 이들도 많습니다. 실제로 다이나코(Dynaco), 피셔(Fisher), 매킨토시(Mcintosh), 마란츠(Marantz) 등 시대를 풍미했던 브랜드 중 상당수가 미국 제조사였고, 그 중 일부 모델들은 희대의 명기로 손꼽히며 오늘날까지도 수집가들 사이에서 고가에 거래되곤 하죠.

하지만 영원할 것만 같았던 미국의 아성은 1960년대 말에서 1970년대 초에 위기를 맞이합니다. 일본의 전자산업 발전으로 인해 값싼 제품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죠. 부유층의 전유물처럼 여겨졌던 오디오가 저렴한 가격에 공급되기 시작하자 시장의 수요는 해당 가격대에 몰리게 되었고, 이 시점에 미국 제조사들의 선택은 주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었습니다. 품질을 타협하고 가격을 낮추는 것이죠.

하지만 이는 크나큰 패착이었습니다. 당시 일본의 가성비는 인건비가 높은 미국으로서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따라갈 수가 없었거든요. 이로 인해 돌아오는 것은 미국 제조사들의 브랜드 이미지 하락과 안목 있는 음악 및 오디오 애호가들의 실망 섞인 목소리뿐이었죠.

폴 블레이(Paul Bley)의 밴드 시절의 마크 레빈슨 (좌측에서 세번째)

이런 상황에 비탄을 금치 못한 한 젊은 재즈 연주자가 있었으니, 바로 마크 레빈슨(Mark Levinson)입니다.

더블 베이시스트였던 그는 20세 이전에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 소니 롤린스(Sonny Rollins), 조니 그리핀(Johnny Griffin), 칙 코리아(Chick Corea), 키스 자렛(Keith Jarrett)과 같은 뮤지션들과 합주를 했고, 1966년부터 1971년까지는 폴 블레이(Paul Bley)의 밴드에서 전속 더블 베이시스트로 활동했습니다. 또한 트럼펫, 플루겔 호른, 사로드까지 두루 다룰 줄 알았던 다재다능하고 유망한 연주자였죠.

그는 기본적으로 연주자였지만 기계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22세였던 1968년도에 히피 문화의 상징이자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전설적인 우드스톡(Woodstock) 록 페스티벌에 사용된 믹서를 설계했을 정도였죠.

재즈 연주자였던 그가 제조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진 건 오디오, 그 중에서도 고음질을 추구하는 홈 하이파이(Home Hi-Fi)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이 참여한 라이브 공연과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들었던 소리를 집에서도 똑같이 듣고 싶었던 거죠. 하지만 당시의 상황으로는 불가능할 뿐더러 미국 하이파이 제조사들의 행보를 봤을 때 가까운 미래에도 실현 가능성이 낮다고 여긴 그는 결국 자신이 직접 해보기로 결심하고 자신의 이름을 본 딴 오디오 메이커 “MLAS(Mark Levinson Audio Systems)”를 설립합니다. 그리고 목표 달성을 위해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들을 고용하죠. 그렇게 마크 레빈슨은 1972년, 26세의 나이로 1950~60년대와 선을 긋는 새로운 시대의 막을 열게 됩니다. 바로 지금까지 그 이미지가 이어져오고 있는 ‘미국 하이엔드 오디오’의 시작이죠.

물론 변화의 필요성을 느낀 건 마크 레빈슨만이 아니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크렐(Krell), 패스 랩스(Pass Labs), 제프 롤랜드(Jeff Rolland)와 같은 경쟁사들이 뒤이어 등장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고, 이들은 마크 레빈슨과 함께 미국 하이엔드 오디오 시대를 더욱 공고히 만들며 일본으로 넘어가고 있던 오디오 산업의 패러다임을 ‘하이엔드’라는 기조로 되돌려 놓았죠. 하지만 그 포문을 연 선구자가 마크 레빈슨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어찌보면 미국의 하이엔드 제조사들은 마크 레빈슨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Mark Levinson
LNP-2
Madrigal Audio Labs 시절 쏟아진 명기들

10년 후, 재정난으로 인해 마크 레빈슨은 회사를 양도할 수밖에 없었고, 그 이후로도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었지만 그 와중에도 마크 레빈슨은 하이엔드를 대표하는 브랜드로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으며 지속적으로 기념비적인 제품들을 쏟아냈습니다. 초창기의 LNP-2 프리, JC-1 MC 전용 포노, ML-2 파워앰프는 물론, 1980년대에 마드리갈(Madrigal Audio Labs) 산하에서 출시되었던 № 26 프리, № 20 모노 및 № 23 스테레오 파워앰프, 그리고 1990년대에 출시되었던 № 30, 35, 36 DAC와 № 31, 37 CD트랜스포트, 그리고 № 38, 380 프리앰프, 마지막으로 플래그십으로 출시되었던 № 32 프리와 타워형 모노 № 33 파워앰프까지, 마크 레빈슨에서 출시된 제품들은 90년대까지 거의 대부분 명기 반열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죠.

하지만 2000년대 들어 하만 인터네셔널 그룹(Harman International Group)에 인수되면서 마크 레빈슨은 일본의 세단 브랜드인 렉서스(Lexus)용 카오디오 사업에 집중하게 되었고, 하이엔드 제조사로서의 입지가 약화되고 맙니다. 설상가상으로 야심차게 출시한 400번대 시리즈 역시 그간의 역사가 무색할 정도로 오디오 애호가들에게 외면당했죠. 다행히 № 33의 후속기인 № 53은 진보적인 스위칭 전원부와 클래스 D 설계로 다시금 세상을 놀라게 하면서 체면은 지켰지만, 플래그십인 만큼 많은 사용자층을 확보하지는 못했습니다.

마크레빈슨 № 585

그렇게 저무는 줄만 알았던 마크 레빈슨이 다시금 부활의 신호탄을 쏜 건 2008년, 500번대의 첫 모델이었던 № 585 인티앰프였습니다. 다시 과거로 돌아온 것 같은 외관과 음색, 그리고 최근 트렌드를 반영한 다양한 기능들은 오디오 애호가들의 관심을 되돌리기에 충분했죠. 

№ 519, 526, 534

그 이후로 마크 레빈슨의 행보에는 거침이 없었습니다. 바로 뒤이어 № 519 스트리밍 SACD 플레이어, № 526 포노 및 DAC 내장 프리앰프, № 534 스테레오 및 № 536 모노 파워앰프를 연달아 출시했고, 이 제품들 역시 매체들과 오디오 애호가들에게 호평을 받으며 마크 레빈슨은 “잠시 쉬었을 뿐”이라고 얘기하듯 보란듯이 다시금 하이엔드를 대표하는 브랜드로서 입지를 다졌죠.

그리고 2019년도에 마크 레빈슨은 아주 반가운 소식을 전합니다. 자사 최초로 4자리 숫자의 트리클다운 라인업을 출시한다는 것이었죠. 그렇게 № 5802, 5805 인티앰프, № 5101 스트리밍 SACD 플레이어, 그리고 오늘 리뷰에서 다룰 № 5206 포노 및 DAC 내장 프리앰프와 № 5302 스테레오 및 모노 파워앰프가 탄생하게 됩니다.

№ 5206

먼저 № 5206을 꺼내보면 마크 레빈슨의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블랙 바탕에 실버로 포인트를 준 케이스, 그리고 강렬하지만 강조되지 않은 레드 라이트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1인치의 두터운 두께를 자랑하는 전면 패널은 중앙부와 좌우의 날개로 나뉘어져 있는데요, 상하 모두 약간의 각도를 주어 세련미를 더했네요. 

중앙부는 유리 디스플레이가 위치하고 있는데, 자세히 보면 테두리를 얇은 알루미늄 베젤이 감싸고 있고, 이 베젤은 좌우 날개부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좌우 날개는 끝으로 갈수록 유려하게 얇아지고요.

№ 5206

디자인은 완벽한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습니다. 중앙부에는 왼쪽부터 차례대로 메뉴 버튼, 스탠바이 버튼, 헤드폰 6.35mm 헤드폰 단자가 위치하고 있는데, 언뜻 보면 모두 버튼처럼 보이게 헤드폰 단자와 버튼 사이즈를 일치시켜 놓았습니다. 통일감에 대한 편집증적인 집착이 엿보이는 부분이죠. 좌측 날개의 입력단 셀렉터와 우측 날개의 볼륨 노브도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는데, 자세히 보면 단순한 원통형이 아니라 모래시계처럼 완만한 곡선을 주어 그립감을 향상시키고 날개 표면으로 부드럽게 이어지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마감도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제조사들은 많은 경우 금속 결이 느껴지는 브러시드 혹은 양극산화 처리를 거친 알루미늄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브러시드는 빌렛 별로 색상이 상이한, 양극산화 처리는 표면이 우둘투둘하다는 문제가 있죠. 반면 № 5206은 검정 양극산화 처리 후 고운 입자를 일정한 압력과 균일한 분포로 분사하는 비드 블라스트(bead-blast) 방식을 채택했습니다. 덕분에 생산 일자와 관계없이 동일한 색상과 매끄러운 질감을 제공하죠.

보고 있노라면 정말 흠잡을 데 없이 아주 단정하면서 동시에 세련된 디자인과 섬세한 가공, 그리고 돋보이는 윤곽 처리에 감탄하게 되는데요, 비록 500번대와 비교하면 권위감이 느껴지는 묵직한 맛은 상대적으로 덜하긴 하지만, 트리클다운 라인업이라는 걸 감안했을 때, 외관은 “역시 마크 레빈슨”을 외치기에 부족함이 없는 완성도를 보여주었습니다.

기능으로 넘어가볼까요? № 5206은 오디오 시스템에서 허브 역할을 수행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다양한 기능을 지원합니다. 주요 기능들을 나열해보면 첫째, 프리앰프, 둘째, 헤드폰 단자, 셋째, MM 및 MC 포노 스테이지, 넷째 DAC, 다섯째 블루투스 리시버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텐데요, 하나하나 같이 살펴보시죠.

마크 레빈슨의 특징 중 하나는 내부에 레이아웃을 도면화해서 표기해 놓는다는 겁니다. № 5206 역시 마찬가지인데요, 앞 부분에는 전원부, 뒷 부분에는 좌우 채널이 분리된 풀 밸런스드 설계 방식의 프리앰프 회로와 포노단이 위치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회로를 직접 살펴보면 풀 밸런스드임은 물론, 집적 회로 하나 없이 전부 풀어서 설계한 풀 디스크리트, 그리고 신호경로에 음질 열화를 일으키는 커패시터 사용을 배제한 다이렉트 커플드 방식으로 설계된 클래스 A 프리앰프임을 알 수 있죠. 이 회로는 자사의 상급 프리앰프인 № 526을 설계하면서 터득한 퓨어 패스(Pure Path) 즉, 순수 경로라는 이름의 설계 방식에 더해 새로이 획득한 두 개의 특허로 제작되었다고 합니다.

알루미늄 덮개로 차폐된 전원부는 토로이달 트랜스를 사용하는 리니어 전원부와 SPMS 스위칭 전원부로 나뉘어져 있는데요, 각 용도에 맞게 신호를 직접적으로 처리하는 부분에는 리니어를, 컨트롤 보드, LED, 볼륨단 등과 같은 디지털 부분에는 SMPS를 구분해서 사용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언밸런스드 RCA와 밸런스드 XLR 각각 2조로 구성되어 있는 아날로그 입력단에는 개별적으로 높은 신뢰도의 스위칭 릴레이가 장착되어 있는데요, ‘달칵’거리며 바뀌는 릴레이 전환은 입력단 간 신호 간섭이나 누설이 원천 차단되는 방식이죠. 결론적으로 입력된 신호를 왜곡 없이 전달하는 하이엔드 프리앰프의 정석적인 설계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다음으로 눈썰미가 좋은 분들은 헤드폰 단자는 있는데 별도의 헤드폰부가 없는 걸 알아채셨을 겁니다. № 5206의 헤드폰 출력 단자는 별도의 회로 구성이나 모듈을 추가하지 않고 출력단에서 직접 구동하는 걸 택했는데요, 이런 방식은 대체적으로 얄궂은 모듈보다 훨씬 좋은 음질을 들려주는 경우가 많죠. № 5206은 여기에 더해 헤드폰을 구동하기에 알맞은 전류 및 전력 용량으로 맞춤 설계해서 최적의 음질을 보장한다고 합니다.

셋째로 포노 스테이지는 일명 ‘하이브리드 게인 토폴로지(Hybrid Gain Topology)’ 회로로, MM과 MC 모두를 지원합니다. 마크 레빈슨에 따르면 № 526의 퓨어 포노 스테이지(Pure Phono Stage)와 동일한 개별 구성 요소를 고품질 저잡음 회로와 결합해서 저렴한 비용으로 고성능을 달성했다고 하네요.

RIAA 커브 보정 역시 № 526과 마찬가지로 정밀한 저항을 사용한 패시브, 폴리프로필렌 커패시터로 네거티브 피드백을 활용한 액티브 방식의 장점들을 취합한 하이브리드 방식으로 뛰어난 정확도를 보장한다고 하고요. 포노 스테이지가 구색 갖추기가 아님은 후면에서도 드러나는데요, 카트리지의 사양에 맞춰 MM은 커패시턴스를 20부터 170pF까지, MC는 부하 임피던스를 37에서 1000Ω까지 4단계로 세밀하게 세팅할 수 있도록 DIP 스위치가 마련되어 있습니다.

DIP 스위치 바로 밑에는 AES/EBU 1개, A타입 USB 1개, 광학 2개, 동축 2개로 총 6개의 디지털 입력단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디지털 보드가 프리앰프 회로 밑에 적층 방식으로 배치되어 있다는 얘기겠죠. 마크 레빈슨은 № 5206의 DAC에 프리시전 링크 II DAC(Precision Link II DAC)이라는 명칭을 붙였는데요, 미국 ESS Sabre사의 Pro 시리즈 32비트 델타 시그마 칩을 기반으로 해서 자사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설계했다고 합니다.

자세한 설명은 찾을 수 없었지만 지터 제거 회로, 그리고 무엇보다 DAC 성능의 핵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I/V 변환회로를 풀 밸런스드, 디스크리트로 구성하고 전원부에 많은 신경을 쓴 것으로 보입니다. 참고로 USB는 32-bit/384kHz, DSD는 11.2MHz까지 현존하는 모든 샘플링 레이트를 지원하고, MQA(Master Quality Authenticated) 포맷까지 재생한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블루투스는 aptX-HD 프로파일로 24-bit/48kHz의 고음질까지 전송 가능하고요.

요약하자면 № 5206은 하이엔드 프리앰프에 더해 헤드폰앰프, 포노앰프, DAC, 블루투스 리시버까지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는 다기능 제품입니다. 그리고 그 어느 기능 하나도 구색 갖추기 용으로 대충 만들지 않았죠.

№ 5302

№ 5302 파워앰프로 넘어가보면 № 5206과 완전한 통일감을 이루고 있는 외관 디자인임이 단번에 드러납니다. 도드라지는 특징이라면 오랜만에 되살아난 좌우 날개의 핸들인데요, 재미있는 건 № 5302 위에 № 5206을 올려보면 이 핸들 마저도 № 5206의 좌우 노브와 완전히 동일한 위치로 보이게 부착되어 있다는 겁니다. 마크 레빈슨의 편집증적인 집착이 엿보이는 또 다른 부분이죠.

№ 5302 역시 완전한 풀 디스크리트, 다이렉트 커플드, 풀 밸런스드 구성 방식으로 설계되었습니다. 증폭 방식으로는 A/B 클래스를 택했고요. 전력은 1,100 VA 용량의 토로이달 트랜스포머로부터 끌어오는데요, 한 눈에 봐도 거대해 보이는 만큼 № 5302의 무게 또한 31.7kg로 상당히 육중한 편입니다. 제품의 높이가 그리 높지 않아서 만만하게 봤는데, 직접 들어보니 핸들이 장식용이 아니었음을 실감할 수 있었죠.

전압 게인 스테이지에는 자사의 상급 파워앰프인 № 534의 직계 토폴로지가 적용되었습니다. 출력 스테이지 회로에 장착된 채널 당 4개의 10,000uF 커패시터는 8Ω에서 135와트, 4Ω에서 270와트로 정확히 2배수로 증폭하는 출력을 안정적으로 전달하죠. 

№ 5302의 가장 큰 특징은 후면의 토글 스위치를 통해 간단히 모노 브릿지로 전환할 수 있다는 점인데요, 이 경우 8Ω에서 275와트, 4Ω에서는 자그마치 550와트의 대출력 앰프로 변모하고 2Ω에서도 안정적인 작동을 보장합니다. 입력단은 물론 언밸런스드 RCA와 밸런스드 XLR 모두 지원하고요

마지막으로 두 제품 모두 후면 최하단에 보면 A타입 USB 단자와 이더넷 포트가 있는데, 둘 모두 펌웨어 업데이트용으로 네트워크 스트리밍이나 USB 메모리 재생은 지원하지 않으니 혼동하는 일 없으시길 바랍니다.

사운드

길게 돌아왔지만 결국 중요한 건 사운드겠죠. 긴 말 않고 바로 청음평 시작하겠습니다. 청음 테스트는 노트북에서 푸바 2000(Foobar 2000)으로 FLAC과 DSD 무손실 음원을 재생하는 방식으로 진행했습니다. 노트북에서 № 5206으로의 연결은 USB를 통해서 이루어졌고요. 파워앰프는 № 5302 두 대로 스테레오와 모노 브릿지 구성을 비교해가며 들어보았습니다. 스피커는 PMC twenty5.26i를 사용했고요.

마크 레빈슨을 흔히들 하이엔드의 기준, 표본, 내지 교과서로 부르는 경우가 많죠. 이러한 수식어는 비단 마크 레빈슨이 미국 하이엔드 오디오의 선구자여서 붙은 것만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결점 없는 성향을 빗댄 표현이라고 보는 게 맞죠. № 5206과 № 5302의 조합이 들려주는 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중립적인 온도감과 두께감, 그리고 모범적인 밸런스를 바탕으로 단정하고 안정적인 사운드를 들려주죠.

조금 더 자세히 들어가보면 일단 가장 기본 덕목이라 할 수 있는 정보량은 꽤 많은 편입니다. 내장 DAC의 성능도 중급기 이상은 되는 듯하고요. 덕분에 입자가 상당히 작고, 인위적으로 매끈하게 윤색되지 않았음에도 촘촘함에서 오는 고운 텍스처를 보여줍니다.

적극성은 기본적으로 차분한 편입니다. 무대도 뒤로 물러나 거리를 두고 자리잡고 다이내믹스 역시 평탄한 편이죠. 그럼 얌전하고 지루한 샌님같은 성향이냐 하면 그건 아닙니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설명드리죠.

첫번째 이유는 무대와 공간을 그려내는 방식입니다. PMC는 현장감을 위시로 하는 스피커로, 상당히 적극적이고 포워딩하며 공간을 크게 그려내는 타입입니다. 반면 디테일과 스테이징 표현에는 약하죠. 그런데 마크 레빈슨을 만나면 포워딩하던 무대가 쑤욱 뒤로 들어가면서 안정적으로 자리잡고 각 악기의 정위감이 또렷해집니다. 적극성도 한풀 누그러지죠. 하지만 공간은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광활하게 표현됩니다. 말하자면 무대까지의 거리는 멀어졌는데, 무대는 더 또렷이 보이고 무대에서 나는 소리는 공간의 제약에서 완전히 벗어나 시원시원하게 쭉쭉 뻗어 나간다고 할까요?

두번째 이유는 빠른 속도와 섬세한 표현력입니다. 앞서 입자가 상당히 작고 촘촘하며 고운 텍스처를 보여준다고 했는데, 이런 특성은 따듯한 성향과 만나면 자칫 지나치게 부드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 조합은 편안하다고 느낄 정도로 꽤 부드러운 편이죠. 하지만 № 5206 & № 5302은 상당히 기민한 반응속도와 단정한 끝처리로 이를 타개합니다. 가령 빌리 아일리시(Billie Eilish)의 배드 가이(Bad guy)를 들어보면 저음역대가 깊이 내려가긴 하지만 덩어리가 크거나 여운을 남기지 않고 음 끝을 굉장히 깔끔하게 처리하는 걸 볼 수 있죠.

№ 5206 & № 5302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터치가 가볍다는 겁니다. 즉, 피아노의 타건, 바이올린의 보잉, 혹은 성대에서 목소리가 울리기 시작하는 시점 즉, 어택에서 소리가 응집되어 있다가 무겁고 부담스럽게 터져나오기 보다는 쉽고 사뿐히 이탈된다는 얘기인데요,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편안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아주 짧게 표현하자면 “단정하고 안정적인데 들릴 거 다 들리는 사운드”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듯한데요, 음색적 매력이 돋보이는 성향은 아니지만 소리의 완성도 측면에서는 굉장히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세부적인 특성은 다르겠지만 별 다른 결점이 없고 유행이나 취향을 타지 않는 점에서 스피커로 따지면 B&W가 연상된다고 할까요?

스테레오에서 모노 브릿지로의 변경은 대부분의 스테레오 대 모노모노 구성 간의 차이와 진배없었습니다. 배경은 더욱 적막해졌고 공간감과 깊이감은 대폭 향상되었으며, 다이내믹스 대비는 뚜렷해졌고 반응속도는 더욱 기민해졌죠. 모노 브릿지 구성이 비단 출력 증가와 우퍼 장악력만이 아니라 전반적인 성능을 향상시켜주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하지만 스피커 및 즐겨 듣는 음악 장르에 따라 일장일단이 있을 수도 있는데요, 예를 들어 PMC twenty5.26i로 듣는 잉거 마리 건더슨(Inger Marie Gundersen)의 렛 잇 비 미(Let it be me)의 경우, 스테레오로 들었을 때 비로소 우퍼를 꽉 움켜쥐고 있던 아귀의 힘이 살짝 풀어지면서 여운이 조금 생겨나 훨씬 아늑하고 편안하게 들렸고, 공간 역시 협소해지고 무대가 약간 앞으로 이동하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더욱 호소력 있게 들렸습니다. 반대로 섬세함을 위시로 하는 장영주(Sarah Jang)의 프랑스 바이올린 소나타 연주는 스테레오에서 긴장감이 떨어지고 각 악기의 미세한 마이크로 다이내믹스가 느껴지지 않아 심심하고 단조롭게 느껴졌죠.

사실 이는 장르 간 차이이기도 하지만 № 5302 모노 브릿지의 출력이 너무 출중한 나머지 PMC twenty5.26i가 오버 드라이브 되어서 나타난 현상이기도 한데요, 모노 브릿지를 고려하는 분이라면 본인이 소유하고 있는 스피커의 허용 입력을 충분히 고려해보고 결정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마치며

제조사가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대의 라인업을 출시하는 건, ‘인지도 향상’이라는 효과를 위해 ‘브랜드 가치하락’이라는 리스크를 감수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그 주체가 재원을 아끼지 않고 음질을 최우선시해왔던 하이엔드 제조사라면 중·고급기 소비자들의 선택에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가성비를 충족시켜주지 못할 위험도 크죠.

따라서 하이엔드, 그것도 미국 하이엔드의 표상으로 군림했던 마크 레빈슨의 트리클다운 시도는 과감하고 용감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글을 볼 일은 없겠지만 용기 내어준 마크 레빈슨사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당사의 시도는 성공했노라고.

한줄평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용감한 시도, 결과는 성공

마크 레빈슨 № 5206 & № 5302

장점 단점
  • 단정하면서 동시에 세련된 디자인
  • 섬세한 가공과 돋보이는 윤곽 처리
  • 편집증적인 좌우대칭 및 제품간 통일성
  • 500번대를 트리클다운한 하이엔드 설계 방식
  • 출중한 성능의 DAC, MM/MC포노, 헤드폰 출력 (프리)
  • 편리한 aptX-HD 블루투스 (프리)
  • 출중한 구동력 (파워)
  • 스테레오와 모노 브릿지간의 간편한 전환 (파워)
  • 모노모노 구성과 차이 없는 모노 브릿지 (파워)
  • 결점 없고 유행 및 취향을 타지 않는 단정하고 안정적인 사운드
  • 호소력 및 감흥 다소 부족
항목 별점
디자인 / 기능
사운드 성능
사운드 매력
총점
두두오 x 하이파이매거진

written by 마누
photo by 이동훈

제품사양

주요특징
  • Pure Path 클래스-A 아날로그 신호 (2개의 특허기술)
  • Precision Link II DAC (PCM: 32-bit/384kHz, DSD: 11.2MHz)
  • 입력단에 독립적인 고신뢰도 스위칭 릴레이 사용
  • 클래스-A 하이패스 서브우퍼 필터
  • 프리미엄 하이브리드 토폴로지 포노 스테이지
  • 4단계로 조정 가능한 MM 커패시턴스와 MC 부하 임피던스
  • 패시브와 액티브의 장점을 취합한 하이브리드 RIAA 커브
  • MQA 풀 디코딩 인증
  • 전용 80VA 토로이달 트랜스포머
  • 광범위한 내부 차폐
  • 2개의 개별 전압 조정 스테이지
  • 미국 설계 및 제조
입력
  • MM & MC 포노
  • aptX-HD 블루투스
  • 홈시어터 프로세서 패스-스루 모드
출력
  • 싱글 엔디드 RCA & 밸런스드 XLR
  • aptX-HD 블루투스
  • 홈시어터 프로세서 패스-스루 모드
제어
  • Mark Levinson 5 Kontrol 앱
  • 맞춤형 알루미늄 IR리모컨
  • IP, RS-232, 12V 트리거 입/출력
네트워크OTA 업데이트 전용
총판HMG오디오비주얼 (https://www.hmgav.co.kr/)
상세스펙 (PDF)제조사 웹사이트 링크
주요특징
  • 코스메틱 그레이드 방열판
  • IP, RS-232, 12V 트리거 입/출력
  • 미국 설계, 제조
입력
  • 싱글 엔디드 RCA & 밸런스드 XLR
출력
  • 클래스-AB 증폭
  • 스테레오: 8Ω – 135와트. 4Ω – 270와트
  • 모노브릿지: 8Ω – 275와트. 4Ω – 550와트
  • 2Ω에서 안정적인 구동 보장
총판HMG오디오비주얼 (https://www.hmgav.co.kr/)
상세스펙 (PDF)제조사 웹사이트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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