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는 살아 남았는데, 그것을 재생할 드라이브가 없다.

광학 메커니즘 공급 감소로 전통적인 하이엔드 CD·SACD 플레이어가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CD 재생은 스트리밍, NAS, 리핑과 하나의 디지털 플랫폼 안으로 통합되고 있다. PS Audio, Naim, Eversolo 사례를 통해 변화하는 CD 플레이어의 역할을 살펴본다.


CD와 SACD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오디오파일 시장에서는 새로운 SACD와 리마스터 CD가 꾸준히 발매되고 있고, 수십 년간 모은 디스크 컬렉션을 여전히 중요한 음악 소스로 사용하는 애호가도 많다.

하지만 이를 재생하는 하드웨어의 환경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최근 PS Audio와 Naim이 광학 메커니즘 공급 문제로 기존 CD·SACD 제품을 유지하지 못한 사례는 전통적인 하이엔드 디스크 플레이어가 직면한 현실을 보여준다.

동시에 Eversolo와 같은 새로운 세대의 디지털 오디오 기기에서는 CD가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뤄지고 있다.

과거의 CD 플레이어가 하나의 독립된 소스 기기였다면, 이제 CD는 스트리밍과 NAS, 내부 저장장치와 나란히 존재하는 여러 디지털 소스 가운데 하나로 편입되고 있다.

PMG Signature SACD Transport

하이엔드 플레이어를 멈춰 세운 광학 메커니즘

PS Audio는 2026년 플래그십 PMG Signature SACD Transport의 신규 생산을 종료했다. 미국 가격 8,999달러의 고급 디지털 트랜스포트였지만, 제품에 적합한 SACD/CD 메커니즘을 더 이상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없게 된 것이 이유다.

PS Audio 설립자 Paul McGowan은 자사 커뮤니티에서 적합한 드라이브를 더 이상 구할 수 없다고 밝혔다. 광학 메커니즘 자체를 새로 개발하는 것 역시 회사의 전문 영역을 넘어선다고 설명했다.

CDP를 빼고 출시한 Uniti Star Lite

Naim도 비슷한 문제에 직면했다. CD 재생과 리핑 기능을 갖춘 Uniti Star에 사용하던 광학 드라이브가 단종되면서 생산을 지속하기 어려워졌고, 남은 메커니즘은 기존 제품의 서비스와 수리를 위해 보존하는 방향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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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명확하다.

하이엔드 오디오 제조사가 CD 플레이어를 설계한다고 해서 광학 메커니즘까지 직접 만드는 것은 아니다. 상당수 제조사는 전문 공급사의 드라이브를 기반으로 전원, 클럭, 디지털 출력, 진동 제어와 소프트웨어를 설계해왔다.

하지만 PC와 범용 전자제품에서 광학 드라이브가 빠르게 사라지면서 이 공급망도 좁아지고 있다. 특히 SACD까지 지원하는 메커니즘은 선택지가 더욱 제한적이다.

다른 드라이브를 넣으면 해결되는 문제일까

광학 메커니즘은 단순한 레이저 픽업 하나가 아니다.

디스크 회전과 트래킹, 포커싱을 담당하는 서보 시스템부터 제어 인터페이스와 펌웨어, 기계적인 장착 구조까지 하나의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기존 드라이브가 단종됐다고 해서 다른 제조사의 부품으로 간단히 교체하기 어려운 이유다.

하이엔드 CD 플레이어는 여기에 별도의 진동 제어와 전원부, 클럭 시스템까지 결합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핵심 메커니즘이 바뀌면 사실상 제품의 상당 부분을 다시 설계해야 할 수도 있다.

문제는 CD나 SACD 음반의 수요가 완전히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이를 재생할 기계를 구성하는 산업적 기반이 먼저 축소되고 있다는 점이다.

Eversolo에서 보이는 또 다른 형태의 CD 재생

반대로 최근의 일부 디지털 오디오 제품에서는 CD가 직면해 있는 이러한 문제를 기존과 다른 방식으로 타개해 나가고 있다.

Eversolo Play CD Edition은 이를 가장 단순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본체에는 Hitachi-LG의 슬림형 CD-ROM 계열 광학 드라이브가 들어간다. 전통적인 하이엔드 CD 전용 메커니즘보다는 PC나 범용 기기에서 사용해온 광학 드라이브에 가까운 접근이다.

최근 출시한 상위 모델 DMP-A8 Master Gen 2는 물리적인 구성을 조금 더 정교하게 만든다. 측면 슬롯 방식 대신 탑로딩 구조를 사용하고 디스크를 스핀들 위에 직접 올린 뒤 안정화 퍽으로 고정한다. 제조사는 동작 소음과 판독 안정성, 오류 보정 등을 별도로 최적화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변화는 메커니즘 자체보다 CD가 제품 안에서 어떤 역할을 갖느냐에 있다.

CD가 독립된 플레이어에서 하나의 디지털 소스로

전통적인 CD 플레이어에서는 디스크를 넣는 순간부터 DAC를 거쳐 아날로그 출력이 나올 때까지 모든 과정이 하나의 독립된 소스 기기 안에서 완성된다.

한편 Eversolo는 전통적인 제조사처럼 CDP를 특별 대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사양길에 접어든 포맷이라고 외면하지도 않았다. 대신 CD를 자신들의 다양한 디지털 소스 중 하나로, 그리고 자체 디지털 플랫폼의 일부로 편입, 통합시켰다.

CD에서 읽은 PCM 데이터는 네트워크 스트리밍이나 NAS의 파일, 내부 SSD에 저장된 음악과 같은 디지털 처리 경로로 들어간다. 이후에는 동일한 클럭 시스템과 DSP, DAC, 라이브러리 소프트웨어를 거쳐 재생된다.

이 관점에서 보면 CD는 더 이상 특별한 종류의 디지털 소스가 아니다. Qobuz나 TIDAL에서 가져온 데이터인지, NAS의 FLAC 파일인지, 내부 SSD에 저장된 음악인지, 혹은 광학 디스크에서 방금 읽어낸 PCM인지 출처가 다를 뿐이다.

특히 재생 화면을 보면 현재 재생 중인 음원의 출처가 스트리밍인지 CD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다. 하나의 ‘뮤직 플레이어’라는 통합 소프트웨어 안에서 스트리밍과 로컬 파일, CD가 동일한 음악 라이브러리의 일부로 공존한다.

음원의 ‘출신’은 달라도 이 디지털 플랫폼 안으로 들어온 이후에는 여러 소스 가운데 ‘one of them’이 된다. 결국 사용자에게 남는 것은 그것이 어디에서 왔느냐보다, 같은 시스템을 통해 재생되는 음악이다.

리핑이 이 경계를 더욱 흐린다

CD 리핑은 이런 변화를 더욱 분명하게 만든다.

Eversolo 같은 제품에서는 CD를 삽입해 바로 재생할 수도 있지만, 같은 디스크를 내부 저장장치나 외부 스토리지로 리핑한 뒤 음악 라이브러리에 넣을 수도 있다.

리핑 과정에서 앨범 커버, 앨범명, 곡명 등의 메타데이터가 추가되고, 이후에는 스트리밍 음원이나 NAS 파일과 같은 인터페이스에서 검색하고 재생할 수 있다.

이 과정을 직접 경험해 보면 이 제품의 CD 기능은 재생기로서도 쾌적하게 작동하지만, 동시에 일종의 ‘디지털 음원 추출기’에 가깝다는 인상도 준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물리적인 CD와 파일 기반 음악의 경계는 상당 부분 흐려진다.

사용자가 앨범을 선택할 때 그것이 방금 CD에서 읽어낸 것인지, 과거에 CD에서 리핑해 저장한 것인지, NAS에 있는 파일인지가 인터페이스 차원에서는 크게 중요하지 않게 된다.

CD는 물리적인 소장 매체이면서 동시에 디지털 음악 라이브러리로 데이터를 공급하는 하나의 입력 장치가 된다.

플레이어보다 플랫폼이 중심이 되는 구조

이 변화는 CD 재생 방식뿐 아니라 디지털 오디오 기기의 설계 철학과도 연결된다.

과거에는 CD 플레이어, 네트워크 플레이어, 음악 서버가 각각 독립된 기기로 존재했다. 사용자는 소스를 선택하고 프리앰프나 DAC에서 입력을 전환했다.

최근에는 하나의 기기가 스트리밍 서비스와 UPnP, Roon, NAS, 내부 SSD, USB 저장장치, 그리고 CD까지 동시에 관리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이때 중심은 더 이상 CD 메커니즘이 아니다. 음악을 수집하고 분류하고 재생하는 디지털 플랫폼이 중심이고, CD는 그 플랫폼에 데이터를 공급하는 여러 경로 가운데 하나가 된다.

Eversolo의 최근 제품들은 이러한 변화를 비교적 명확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하지만 이 흐름 자체가 특정 브랜드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스트리밍과 로컬 파일 재생, 리핑과 라이브러리 관리가 하나의 인터페이스에 통합될수록 전통적인 소스 기기의 구분은 자연스럽게 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전통적인 CD 플레이어가 의미를 잃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 방식이 기존의 하이엔드 CD 또는 SACD 플레이어를 그대로 대체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SACD는 별도의 디스크 규격과 메커니즘, 라이선스가 필요하기 때문에 범용 CD-ROM 기반의 접근으로 쉽게 대체할 수 없다. PS Audio의 사례가 보여주는 문제 역시 SACD/CD 전용 메커니즘 공급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또한 일부 오디오파일은 디스크 자체를 재생하는 행위와 전용 트랜스포트의 기계적 설계, 별도의 디지털 출력 시스템에 가치를 둔다.

따라서 전통적인 CD/SACD 플레이어는 앞으로도 일정한 시장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그와 동시에 다른 방향이 빠르게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CDP의 역할이 바뀌고 있다

지금 관찰되는 변화는 CD가 사라지는 과정이라기보다 CD 플레이어의 역할이 달라지는 과정에 가깝다.

한쪽에서는 고품질 광학 메커니즘 공급 감소로 기존 하이엔드 CD/SACD 플레이어를 계속 생산하기 어려워지고 있다.

다른 한쪽에서는 범용 또는 새롭게 최적화된 CD 메커니즘을 스트리머와 음악 서버 안에 넣고, CD 데이터를 스트리밍과 로컬 파일과 같은 플랫폼에서 처리하는 제품이 등장하고 있다.

과거의 CD 플레이어가 그 자체로 완성된 하나의 소스였다면, 새로운 시스템에서 CD는 점차 여러 디지털 소스 가운데 하나의 입력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디스크를 직접 재생하든, 먼저 리핑해 라이브러리에 넣든 이후의 재생 과정은 같은 플랫폼에서 이루어진다.

결국 앞으로 중요한 것은 CD라는 매체가 살아남느냐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CD가 독립적인 플레이어를 필요로 하는 특별한 디지털 소스로 남을 것인지, 아니면 스트리밍·NAS·로컬 저장장치와 함께 하나의 디지털 플랫폼 안에 통합되는 여러 소스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인지가 더 중요한 변화다.